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 세 번째)가 지난 24일 부울경 공약 발표를 위해 찾은 경남 창원 경남도의회 앞에서 지지자들과 시위대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한경DB
이재명 경기지사(오른쪽 세 번째)가 지난 24일 부울경 공약 발표를 위해 찾은 경남 창원 경남도의회 앞에서 지지자들과 시위대에 둘러싸여 발언하고 있다. 한경DB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최근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바로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오는 '대장동 개발 사업' 때문인데요.

하지만 다소 의외인 것은 이 개발 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이번에 처음 불거진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이 지사가 5500억원의 이익을 시민 몫으로 확보했다는 내용의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에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요.

그해 7월 방송됐던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알고싶다'에서도 이 지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보도됐고 방송이 나간 직후엔 인터넷 등에서 2016년 개봉한 영화 '아수라'가 뒤늦게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해묵은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이 지사 본인도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겁니다. 심지어 지난 세 차례의 지방 순회 경선에서 과반 이상을 득표하며 '대세론'이 점차 힘을 얻어가던 상황에서 말입니다.

이달 초 지역 언론 보도에서 시작된 대장동 개발 사업 의혹을 한 종합 일간지가 추종 보도할 때만 해도 '찻잔 속 태풍'에 불과했습니다. 이어 이 지사의 최대 라이벌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점차 포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다수 언론은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15일 이 같은 흐름을 단숨에 바꿔놓은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바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김부겸 국무총리를 상대로 펼친 국회 대정부질문이었습니다.

약 10분간 진행된 이 질의에서 윤 의원은 미리 준비한 도식도를 본회의장 전광판에 띄워놓고 대장동 개발 사업의 문제점과 의혹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합니다.

전광판에는 대장동 개발 사업의 시행사인 '성남의뜰' 주주 및 배당금 현황이 고스란히 나타났고 이 가운데 '화천대유' 및 SK증권(특정금전신탁)의 실소유주인 '천화동인 1~7호'가 공개됩니다.

윤 의원에 따르면 SK증권으로 '위장'된 천화동인 1~7호는 모두 총 3억원을 투자해 3463억원의 배당금을 수령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익률로 계산하면 무려 11만5345%에 달하는 정말 믿기 어려운 수치였지요.

윤 의원은 스스로 법인 등기부등본 등을 일일이 떼가며 자체 조사를 벌인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김 총리에게 물었습니다.

"11만5345%. 저런 수익률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총리님께서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십니까."

이전 비슷한 질의에서 "이미 과거에 몇번 감사가 이뤄졌지만 문제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는 식으로 회피했던 김 총리는 이번엔 마지못해 "조금 상식적이지는 않다"고 인정합니다.

100만원을 투자해 원금과 이자를 합쳐 110만원을 돌려받으면 수익률은 10%(10만원÷100만원)입니다. 은행 예금 금리가 연 1~2%에 불과한 시대에 작지 않은 수익률이지요.

그런데 단 7명의 투자자가 단돈 3억원을 내고 무려 11만5345%의 수익을 가져갔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 총리로부터 "대장동 개발 수익률이 비상식적"이라는 상식적 답변을 이끌어낸 윤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대표 '금융통'으로 손꼽히는 의원입니다.

대전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한국금융연구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뒤 줄곧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을 관할하는 정무위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내달 초 시작되는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도 대장동 개발 사업을 놓고 여야 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됩니다. 정무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인 이재명계라는 점에서 증인 채택에서부터 상당한 난항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지금까지도 이 지사 측은 극소수의 투자자들이 11만%에 달하는 수익률을 낼 수 있었던 특혜성 사업 구조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경위를 속시원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종 위기를 정면 돌파하면서 오히려 정치적 체급을 키워온 이 지사였던 만큼 이번에도 그런 승부사적 기질이 발휘될 수 있을지도 관심을 끄는 대목입니다.

지난 상반기 여론의 공분을 낳았던 'LH 투기 사건'에서 보듯 '대장동 11만% 수익률'이 부동산 이슈에 민감한 국민 정서를 건드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 문제가 더이상 갈길 바쁜 이 지사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루 빨리 모든 진실이 밝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