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은 17일 금융감독원이 손태승 회장의 파생결합펀드(DLF) 징계취소 행정소송에 대해 항소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금감원의 결정을 존중하며 항소심 진행 여부와 상관없이 금융감독당국의 정책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짤막한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우리금융 내부에선 ‘추석 연휴를 앞두고 날벼락이 떨어졌다’는 분위기다. ‘징계를 취소하라’는 1심 판결이 나올 때만 해도 ‘지배구조 리스크 해소’ 기대가 컸지만 금감원의 전격적인 항소 결정으로 다시 격량 속에 빠지게 됐다.

다시 '소송 리스크' 빠진 우리금융…'사모펀드 징계' 다른 CEO도 긴장
당초 손 회장의 승리로 끝난 1심 판결 후 최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우리금융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이어지면서 우리금융은 ‘완전 민영화’ 이후의 공격적 경영행보를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초만 해도 금감원이 항소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법원은 손 회장을 징계한 이유인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가운데 ‘금융상품 선정절차 마련 부족’이라는 한 가지를 인정했을 뿐 ‘펀드 판매 후 내부통제 기준 미비’ ‘사모펀드 관련 점검체계 마련’ 등 나머지 네 가지 위반사항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현행법은 금융사에 내부통제 규범을 마련하라고 돼 있지, 준수할 의무까지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금감원이 금융사나 임직원을 제재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향후 감독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방침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여당 초선의원들이 ‘손 회장 항소를 해야 한다’는 성명을 낸 것도 적지 않은 압박이 됐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2년여간 소송을 벌였던 손 회장이 또다시 지루한 소송전을 이어가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사회가 우리금융의 리더십을 인정했음에도 감독당국과 정치권이 흔들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금감원의 항소 강행은 사모펀드 사태로 비슷한 제재 절차가 진행 중인 다른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명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현재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 박정림 KB증권 사장, 나재철 전 대신증권 사장(금융투자협회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 등이 라임과 옵티머스 건으로 금감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손 회장도 라임 사태로 금감원으로부터 별도의 문책경고를 받았다. 이들에 대한 제재는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되는데, 금융위는 당초 ‘손 회장의 DLF 소송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며 일정을 미뤄둔 상태다. 손 회장의 항소심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금융위도 제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는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다.

정은보 금감원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시장 친화적, 징계보다는 예방 위주의 금융감독’ 방침이 출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대선을 앞두고 금융정책과 금융회사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이 더욱 세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징계 절차의 정당성과 일관성이 떨어진다면 감독당국 위상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대훈/정소람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