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세 번째)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세 번째)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김병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동원하자고 한 것에 대해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자영업자에 살포하라는 내용인 만큼 중앙은행 설립 취지에도 맞지 않고 통화정책의 신뢰도와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이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은 발권력 활용하려는 與

"중앙은행이 돈 찍어 자영업자 주라니…한은 설립 목적 흔드는 것"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은은 현재의 양적 완화정책을 조정하는 한편 소상공인 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하는 포용적 완화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당은 지난해부터 한은의 발권력을 활용해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내용의 법안을 수차례 발의했다. 올해 초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극복을 위한 손실보상 및 상생에 관한 특별법안’이 대표적이다. 자영업자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정부가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한은이 이를 모두 인수하는 것이 법안의 골자다. 한은의 발권력을 바탕으로 현금을 살포하겠다는 뜻이다. 윤 원내대표의 발언도 한은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민 의원 법안과 일맥상통한다는 평가가 많다.

여당에서는 한은이 자영업자 채권을 인수하는 구체적 방식 및 구조도 설계해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이 직접 또는 채권매입기구(SPV)를 통해 자영업자 채권을 인수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SPV 매입 방식은 한은이 SPV에 대출하면 SPV가 이 대출금을 바탕으로 자영업자 채권을 매입해주는 것이다. 한은의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확대하는 방안도 제기됐다. 금융중개지원대출은 한은이 은행 등 금융회사에 연 0.25%의 초저금리로 자금을 공급해 중소기업·자영업자를 위한 대출이 늘어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소상공인과 기업 지원 한도는 각각 3조원(업체당 3억원), 13조원(업체당 5억원)이다. 한은 일각에선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늘리는 것을 제한적 범위 내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한은이 자영업자 채권을 직접 인수하거나 SPV를 지원하는 데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내놨다. 한은과 기획재정부 일각에서는 윤 원내대표 발언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통화정책·국가신용도 훼손 우려

"중앙은행이 돈 찍어 자영업자 주라니…한은 설립 목적 흔드는 것"
중앙은행의 자영업자 채권 매입은 주요국의 사례가 드문 데다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다. 한은법 68조에 따르면 한은의 매입대상채권은 국채, 정부보증채 등으로 좁혀놓은 만큼 자영업자 채권 매입이 가로막혀 있다.

통상 자영업자 신용등급은 일반 기업 회사채 등급보다 낮다. 채권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 손실을 메우기 위해 결국 한은이 돈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작용이 빚어진다. 한은이 돈을 찍어 시중에 살포하면 민간은행의 신용창출을 거쳐 그 몇 배로 불어나게 된다. 시중금리와 물가를 밀어올린다. 윤 원내대표의 이날 연설 직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출렁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0.025%포인트 오른 연 1.489%에 마감했다. 지난 7월 15일(연 1.497%) 후 최고치다.

정치권 압력에 밀려서 한은이 발권력을 남용하면 통화정책 신뢰도가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상당하다.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터키 베네수엘라가 금융위기에 직면한 것도 중앙은행의 신뢰 훼손이 배경이 됐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이 매입한 위험자산이 부실화하면 발권력으로 손실을 메워야 한다”며 “돈을 찍어서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것은 통화가치를 비롯해 경제 전반에 무차별적 영향을 주는 만큼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영업자를 비롯한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은 통화정책이 아니라 재정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고은이/이호기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