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아이트론 시니어 매니저 인터뷰

'글로벌 기업 취업' 목표로 미국행
지인 한 명 없는 외톨이 처지
동양인, 여성, 영어 '핸디캡' 어려움

에너지 전문 컨설팅펌 거쳐
글로벌 기업 이직해 팀장 맡아

네트워킹 적극 나서 인맥 쌓고
16시간씩 일하며 전문성 키워

영어 회의 어려웠지만
"자신을 내려놓으니 편해졌다"
주눅들지 않은 게 비결

공부만 해선 미국에서 성공 어려울 수도
적극적으로 인맥 쌓고 대외활동 즐겨야

에너지업계 11년 근무 전문가
'신재생 에너지' 관련 기업 안정적
플로리다대 대학원 시절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 정혜원씨 제공

플로리다대 대학원 시절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찍은 사진. 정혜원씨 제공

정혜원 아이트론(Itron) 매니저를 처음 만난 곳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페인 음식점이었다. 바에서 떨어진 테이블에 앉았는데도 직원들이 일부러 찾아와 안부를 물었다. 그렇게 너댓명과 인사를 마치고서야 인터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핵인싸(핵과 인사이더의 합성어로 무리 속에서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란 단어가 저절로 떠올랐다.

정 매니저는 링크드인 1촌이 800명 이상이라고 한다. 글로벌 기업 CEO(대표이사) 등 '유명인'을 뺀 일반인 중엔 흔치 않은 숫자다. 미국 인맥이 그만큼 탄탄하단 의미다. '네트워킹(인맥형성)'을 즐기는 그녀의 적극적인 성격 영향이 크다.

11년 전 글로벌 기업 취업을 목표로 미국에 왔을 땐 지금과 상황이 달랐다. 지인 한 명 없는 '외톨이'였고 '영어가 서툰 아시아 출신 여성'이란 핸디캡도 컸다.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사서 고생한다'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버텼던 건 '이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주 네트워킹(인맥) 모임에 나갔고 속한 그룹에서 일부러 역할을 맡았다. 언어의 벽을 허물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하루에 16시간씩 일하고 공부했다.

그렇게 11년. 첫 직장이었던 뉴욕 컨설팅펌에선 '스마트미터' 전력망 전문가로 인정 받았고 지금은 글로벌 기업의 팀장까지 올랐다. 정 매니저는 "아직 성공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관심사가 많기 때문에 하나를 성취하면 다른 쪽으로 또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매니저의 취미는 마라톤이라고 한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종착점을 향해 뛰고 있는 그를 만나 지금까지의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우연히 경험한 독일 인턴 생활이 미국행 이끌어
▶아이트론은 글로벌기업인데 일반인들에겐 잘 안 알려져있어요. 어떤 회사인가요

"전기와 가스 같은 에너지 사용량과 데이터를 측정, 관리, 분석하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개발합니다. 에너지기업이 스마트그리드(전력 공급자와 사용자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차세대 전력망)를 구축해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죠. 필드에서 아이트론 하드웨어 제품을 사용해 수집한 정보를 에너지기업들이 아이트론 소프트웨어를 통해 분석하고 전략을 결정합니다."

▶지금 하시는 일은요.

"시니어 테크니컬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에너지기업이 아이트론 하드웨어를 필드에 설치하고 데이터를 읽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다고하면 제가 그 프로젝트를 총괄합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팀장급이죠."

▶전문적인 분야 같은데 아이트론이 첫 직장인가요.

"바로 들어올 순 없어요. 뉴욕에 있는 에너지기업 전문 컨설팅회사에서 7년 정도 일했어요. 그리고 혼자 컨설팅을 2년 정도 했어요. 그 경력을 바탕으로 지인 소개를 받아 아이트론엔 지난 1월 입사하게됐죠."

▶대학생 때부터 미국 취업을 준비하셨는지.

"한국에선 평범한 대학생이었어요. 해외에 있는 친척도 없었고 주변에 유학을 하는 친구도 없었기에 해외거주나 취업은 저랑은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정말 우연이었어요. 4학년 때였죠. 아는 언니가 외국계기업과 대학생들을 상대로 인턴십을 매칭해주는 동아리 (AIESEC)에 인터뷰를 간다기에 저도 함께 가봤죠. 운 좋게 그 동아리에서 저를 독일 뮌헨에 있는 '노키아지멘스네트워크'를 연결해줬어요. IT전략팀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일하면서 외국에서 저도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꿈을 가지게 됐어요."

▶외국계 기업의 좋은 점이 무엇이던가요.

"한국에서도 한국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에서 인턴을 했는데, 한국은 대기업, 외국계 기업 상관없이 상하관계가 뚜렷해요. 그런데 독일에선 인턴도 팀의 일원으로 존중해주고 기회를 주더라고요."
독일 인턴 시절. 정혜원씨 제공

독일 인턴 시절. 정혜원씨 제공

▶바로 준비를 시작했나요.

"독일에 있으면서 해외에 취업하려고 마음을 정했어요. 독일과 미국에 있는 대학원에 지원을 해서 합격을 하고 국내 대기업 현지 채용에되 합격을 했습니다. 결국에는 미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영어를 쓰고 더 기회가 많을 거 같아서였죠. 미국에서 리크루팅은 우리나라 랑은 많이 달라요. 큰 회사들의 경우 각 주(State) 마다 오피스 들이 있는데 각 오피스에서 그 주에 있는 타겟 스쿨 (Target School) 로 리크루팅을 나가거든요. 취업을 하려면 타겟 스쿨로 대학원을 가는 게 유리하기도 했고 빨리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커서 겨울 학기에 시작할 수 있는 플로리다대 대학원에서 경영정보학을 공부했어요. 8월 독일 인턴을 마치고 귀국했는데 이듬해 1월에 나갔어요."

▶첫 해외 대학원 생활은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정말 흥미로웠어요. 학교가 미식축구로 유명해요. 친구들하고 미식축구 보면서 그 문화를 이해했고요. 백인친구들 뿐만 아니라 라틴계, 흑인 친구들도 만났고요. '미국의 축소판'이 아니었나 싶어요. 취업을 위해 1년 반 만에 졸업했는데 그런 건 좀 아쉬웠죠."
미국 기업 150곳 지원 끝에 컨설팅펌 합격
▶첫 직장이 에너지컨설팅회사인데, 취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컨설팅회사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원 졸업 때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미국 경제가 회복이 안 됐어요. 외국인들에게 비자를 지원해주는 회사들도 몇 없는데 채용도 줄어서 현지 학생들과 경쟁해야했죠. 지원서를 150개 정도 넣었는데 떨어진 것도 많고 면접도 많이 봤는데 결국 블랙앤비치(Black&Veatch)란 에너지 전문 컨설팅회사에 최종적으로 합격했고 가기로 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가게 된거죠. 여러 오피스 중에서 뉴욕에서 일했어요."

▶컨설팅회사는 어땠나요

"전 하나만 깊게 파는 것보다 여러 가지 아는 걸 좋아해요. 전력, 발전소 시스템, 마켓에 대해 배우고 에너지 M&A도 다뤄보고 정말 재밌었어요. 그리고 필드에 계신분들부터 상무나 이사 분들까지 프로젝트하면서 같이 일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2011년 부터 18년까지 7년 간 일했죠."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면요.

"2017년이었어요. 유틸리티(에너지)기업들의 고지서를 발행하는 한 스타트업 고객사가 있었어요. 저희 팀에 '스마트 미터'(검침원 없이 원격으로 고객의 전기 사용 데이터를 수신 받을 수 있는 기기) 관련해서 뭘 할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선불식(프리페이드) 미터'였죠. 통신사 선불요금처럼 전기도 선불로 쓰는거였어요. 그 스타트업이 '프리페이드 솔루션을 개발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매출을 낼 수 있고 전략을 짜야하는 지 컨설팅을 했습니다. 2019년 그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런칭했고요. 보람있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컨설팅펌에 다니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뭐였나요.

"아무래도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외국어로 일하는 거니까 그런 데서 많이 힘들었어요. 사내 정치라거나 이런 것들은 언어 스킬을 필요로하는데요. 그런 걸 배우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영어가 큰 문제였네요.

"네 제가 외고를 나온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학부를 한 것도 아니고요. 석사 1년 반 하고 나서 미국 회사로 떨궈진 것이죠. 영어로 하는 회의, 특히 전화 회의가 처음에는 가장 어려웠던것 같아요. 게다가 영어로 보고서 쓰는 것 역시 할 수는 있지만 한국어 처럼 단시간 내에 술술 쓸 수 없었으니 처음에는 많이 답답했죠."

▶소통 때문에 생긴 문제엔 어떻게 대응했나요.

"무조건 바로 대처하기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분석하려고 했어요. 왜냐면 그런 상황이 되면 뭔가 말을 해야할 것 같고 액션을 줘야할 것 같은데 그러다보면 실수도 하고 그러거든요. 방지하기 위해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상황부터 파악하려고 했죠."

▶영어는 어떻게 이겨냈나요.

"마음가짐이 중요했어요. 주눅들지 않는거요. 글을 못 써도 계속 써서 보냈어요. 모국어가 아닌데 어떻게 (제가) 실수를 안 하겠어요. 그런데 미국 애들도 다 실수해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더라고요. 얘네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자신감을 얻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시간을 많이 투자했죠.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애들이 8시간 걸려서 할 일을 저는 더 오래 걸려 하기도 했지만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히 일했죠. 업계 관련 자료들을 많이 읽었어요. 읽어야 보이기도 하지만 업무상 업계 이야기를 많이 해서 도움이 많이 됐죠."
"자신을 버리니까 영어가 편해졌다"
▶주변 사람들을 신경쓰다보면 주눅 들지 않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네, 우리나라사람들 뭐 든지 잘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아요. 저 때는 중학교때부터 배웠는데, 외국인만 보면 입이 얼었죠. 제대로 말해보고 싶어서 그런건데요. 미국에선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도 단어 붙여서 이야기하는데 그런 자신감이 (한국 사람들은) 부족한것 같아요. 저도 대학교 1학년 때 어학연수 미국 테네시 벤더빌트로 갔는데, 세탁을 하려면 돈을 내야하는데, '쿼터'로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1달러를 쿼터로 바꿔달라'는 걸 슈퍼마켓에가서 어떻게 이야기해야할 지 몰라서 머뭇거렸던 기억이 나요. '나를 버리는 자세'가 중요해요. 내려놓으니까 일단 뭐랄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제가 이야기를 술술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신감이 생겼고요."

▶컨설팅펌에서 7년 간 일했다는 건 인정 받았다는 건데, 과정이 험난했을 것 같아요.

"에너지유틸리티 전문 분야라서 배경지식이 있어야해요. 리포트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고 또 밖에 나가서 네트워킹에 주력했죠."

▶인맥 넓히기의 비법이 있다면요.

"뉴욕에 있을 때 '영프로페셔널스 인 에너지' (Young Professionals in Energy, YPE)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에너지 업종의 젊은 종사자 모임이었는데, 거기 해피아워에서 만나서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 토론하고요. 에너지업계에 있는 다른 사람들 만나고 친구도 사귀고 에너지에 대한 최신 정책이나 이런 것들도 배우고. 활동을 열심히해서 나중에 모임의 보드멤버도 했었죠. 지금도 샌프란 시스코에서 업계에 있는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링크드 인과 같은 플랫폼으로 교류하고 에너지 업계에 새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친구들 멘토 역할을 맡고 있어요. "
뉴욕 컨설팅펌에서 동료들과 회식 때 모습. 정혜원씨 제공

뉴욕 컨설팅펌에서 동료들과 회식 때 모습. 정혜원씨 제공

▶네트워킹이 미국 회사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됐을까요.

"컨설팅은 트렌드를 잘 읽어야하고요, 프로젝트를 딸 때 '네트워크', 즉 인맥이 중요해요. 일을 잘 할 수 있는 능력은 기본이고요. 고객과 공감할 수 있어야한다는거죠."

▶미국 회사에도 이른바 '사내 정치'가 심한가요

"미국도 똑같아요. 저는 '뭔가 성공하고자 하는 야망이 있고 거기에 대한 집착이 있는 사람이 많이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그런 것까지 신경쓰면 삶이 퍽퍽해질 것 같아서 다같이 두루두루 잘 지냈어요."

▶컨설팅 교육은 체계적인가요

"이건 회사마다 다른데 블랙앤비치는 1:1 도제 시스템이었어요. 컨설팅 회사이다 보니 다양한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 한테 많은걸 배웠죠. 그리고 좋은 매니저를 만났어요. 단점을 지적하기보단 개선할 수 있는 점을 얘기해줘요. 위축되지 않게요.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도움이 많이 됐죠."

▶좋은 컨설턴트의 요건은 뭘까요

"컨설팅은 정치도 정치지만 '결과물'로 보여주는 것이에요. 전 좋은 결과물로 승부를 보려고 노력했어요.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 여자'라는 핸디캡이 있었죠. 미국 친구들이 8시간 일할 때 12시간 일해서 부족하지 않은 결과물을 내려고 했어요. 외롭고 힘들었죠. 그 때 고생해서 지금의 제가 있는거죠. 정신적으로도 극복을 했고 일적으로도 인정 받았어요. 힘든 경험, 그런 가슴 아픈 경험들이 토대가 많이 됐어요."

▶컨설턴트가 잘 맞았던 것 같은데 왜 그만두셨죠.

"잠깐 쉬고 싶었어요. 번아웃이라고 할까요. 휴식이 필요했어요. 2018년이었고요 그래서 2주 동안 미국 로드트립을 했죠. 차에서 자고 텐트에서 자고 렌트카로 돌아다녔어요. 그렇게 4개월 정도 쉬면서 한국 가서 가족도 만나고 그러다보니 일을 다시 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로 샌프란시스코 아이트론으로 오셨나요.

"아니요. 사업을 했어요. 텍사스주 오스틴으로 가서 개인 컨설팅회사를 차렸어요. 그리고 나서 텍사스에 있는 전력망 공급하는 회사의 프로젝트를 수주했죠. 거기서 작년 6월까지 1년10개월 프로젝트를 했고요. 그리고 6개월 또 쉬었어요."

▶사업가와 월급쟁이의 다른점은요.

"돈이 나오는 소스를 본인이 구해야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서 어떻게 다른 회사들이 마케팅을 하고 운영을 하는 것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됐어요."

▶아이트론의 어떤 점에 끌렸나요.

"회사에 있으면 저절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죠. 그리고 사람들을 리드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지구요. 사업을 하면 밖에 나가서 네트워크를 해야하고 처음에 혼자 시작하니 리더가 되기 보다는 고객들이 요청한 일을 하는데 제 역할이 국한되더라고요. 다른 거죠. 또 이 회사는 전 세계에서 사업을 하니까 다른 외국프로젝트에도 관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컨설팅펌과 다른 점이 많겠네요.

"컨설팅은 고객의 데드라인에 맞춰서 일하는데 이 회사는 그런 압력이 없어요. 데드라인도 여유롭게 잡고, 그리고 일을 컨설팅에서처럼 16시간씩 할 필요도 없죠.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경력이 많으신 분들이라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고요. 아직 많이 배워요."

▶팀장의 역할을 잘 하기 위해 특별히 주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일단 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중요해요. 팀원들이 뭔가 저한테 이야기해야할 게 있을 때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게요. 그리고 팀원들이 일을 잘 할 수 있게 문제점을 해결해주면서 관계를 쌓죠. 그리고 제가 실질적으로 성과를 보여주고 팀원들의 프로젝트를 도와주니까 신뢰가 쌓이더라고요."
이민자의 삶 힘들지만 미국에서의 다양한 경험은 '큰 자산'
▶미국 생활의 고비는 없었나요.

"처음 컨설팅에서 1-2년 일할 때 한국의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보면서 '내가 왜 이고생하면서 돈도 조금받는데 선택을 잘 한 걸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돈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재정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한국 밖에서 살면서 가질 수 있는 경험들이 더 소중했어요. 전 경험을 중시해요. 외국에 나와서 살 수 있는 건 지금 아니면 힘들어지니까 저 자신을 밀어붙였죠."

▶24살 여성이 혼자 해외에 나왔는데 가장 힘들었던 점은요.

"평생 살았던 나라를 떠나서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이민자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문화도 달랐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나라라 작은 것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Do not take yourself seriously.'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앓이하면 저만 손해잖아요. 이런 마음가짐이 큰 도움이 됐어요."

▶외로움은 어떻게 이겨냈어요.

"배수의 진을 쳤어요. 못 이겨내면 한국가는것이라고요, 이겨내면서 많이 성장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던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다른사람들을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는 경험이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람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너무 힘들고 일이 많았는데 이 악물고 버텼어요."

▶지금 생각해봤을 때 미국에 잘 나왔다고 생각하나요.

"네, 당연하죠. 두가지 이유인데요. 개인적인 면에선 미국엔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줬어요. 이것 저것 많이 보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 적으로 보면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어요. 아시안 여자 영어가 모국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주고, 그런 점이요. 그리고 주변에 약간 튀는 사람이 있어도 편견 같은 게 없어요. 그냥 쿨하게 '원래 이상한 애야' 이렇게 넘어가고요. 쿨하죠"

▶미국에서 취업하시려는 분들이 노력해야할 게 있다면요.

"음, 미국 학교에 다니면 좋고요. 어디에서든 가장 편하게 들어가는 법은 '아는 사람'이 있는 거에요.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공부만 열심히해서 취업할 거라고 하는데, 힘들어요. 학교 다닐 때 네트워킹 이벤트, 학교 동아리도 해야하고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해요. 자기가 편한 무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 밖으로 나가서 네트워킹 하는게 진짜 도움이 많이 되는것 같아요. 저는 대학원 다닐 때 학생회 임원도 했어요. 회사들이 리쿠르팅하러 왔을 때 '안녕 나 학생회 임원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관계를 맺을수도 있었고요."
미국 취업 위해선 '네트워킹'이 중요...공부만하면 쉽지 않아
▶네트워킹 노력을 안 하면 취업이 어려울까요.

"제가 다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클라이언트가 질문했을 때 그것을 잘 아는 지인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어야하고요, 그 친구가 모르면 다른 친구를 소개시켜줄 수 있고요. 그런 '프로액티브'한 성격이 중요해요. 외국인으로서 정착을 하거나 잡을 잡으려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게 중요해요. 모르는 사람한테 철판깔고 이메일도 보낼 수 있어야하죠."

▶그런 게 안되면요.

"그러면 쉽지 않아요. 여기는 어릴 때부터 운동 같은 과외활동 많이 해요. 팀 안에서 녹아드는 법을 알려주는 거죠. 공대 다니는 친구들도 알음알음 네트워킹 통해서 아마존 같은 곳에 이력서도 넣고 인턴도 하고요. 공부만 죽어라해선 '학자'같은 길을 가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아요."

▶한국 특유의 문화 때문에 미국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을수도 있죠.

"미국 학교에 가보면 진짜 뻔한 내용인데도 손 들고 질문해요. 이렇게 오픈된 문화가 창의성도 많이 길러주는 것 같아요. 한국은 외우는 것, 공식 같은 건 잘하는데 창의력을 요하는 것에선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오랜 기간 사회 규범이란 박스 속에 가둬놓기 때문에 창의성이 너무 떨어지는 거 같아요."

▶대외활동을 원래 좋아하셨나보죠.

"뭘 맡고 이런 것보단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까 학생회도 하고 산업관련 네트워킹 그룹에서도 많이 활동을 했죠.

▶앞으로 뭘 하고 싶으세요.

"에너지 쪽의 스타트업에 가든지, 아니면 벤처캐피털 쪽으로 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지속가능한 에너지 사업에 관심이 많은데요. 이 분야에서 뭔가 기여를 하고 싶어요. 기회가 오면, 때가 되면 가고 싶어요. 그래서 그쪽으로 네트워크를 많이 쌓고 싶고요, 다시 학교를 갈 생각도 하고 있어요."

▶안주하면 안된다는 그런 생각이 강하신가봐요.

"그런 건 아니고요. 저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는 걸 좋아해서요. 제가 가진 스킬을 잘 활용하고 싶어요. 저는 지금 매니징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전략도 많이 했고 시스템도 잘 알고요. 스타트업 자체가 다양한 것을 많이 보잖아요. 스타트업에 들어가면 한 직종만 하는게 아니라 여러가지를 할 수 있으니까요. 저의 자리가 있으니까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삶은 그렇죠. 이거 해보다가 안되면 다른 것 해보고요."

▶미국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오픈마인드(열린마음)으로 와야해요.무슨 뜻이냐면 내가 생각하는 거랑 다른 거를 봤을 때, '저 사람 왜그래'라고 하기보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아니면 일을 하는 방식을 봤을 때 '왜 저렇게 해'가 아니라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같은 유연한 사고방식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두번째는 자신감을 갖고 본인이 자괴감 갖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하고요. 그리고 과외활동을 많이 해야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뭔지 확실하게 알아야죠. 무턱대고 '가고 싶어', '알아서 되겠지' 오면 미국 생활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비자도 기한이 있잖아요. 정해진 시간 내에서 이뤄야하는데 목표 없이 그냥 오면 허비될 수 있어요."
뉴욕 마라톤 완주 때 모습. 정혜원씨 제공

뉴욕 마라톤 완주 때 모습. 정혜원씨 제공

▶생활의 노하우는 없나요.

"노하우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조급함을 가지지 않는 게 좋아요. 샌프란시스코 돌아다니다보면 스타트업 창업자들, 옵션이 벌써 '백만달러' 이런 분들 많아요. 그런 분들 볼 때마다 전 '커낼 샌더스는 KFC를 65세 때 창업했다. 인생엔 때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삶이 여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여정은 도착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과정이 더 중요한거잖아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마라톤해요. 한국에 있을 때는 하프마라톤 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너무 힘들어서, 18시간 한 자리에 앉아있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가슴이 뭉쳐있는 느낌이요. 어느 날 뉴욕에 살 때 강가를 걸었어요. 뛰기 시작했는데 날아가는 기분을 느꼈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뛰어요. 요즘은 마라톤 트레이닝으로 10~15km 뜁니다. 명상 같은 거에요. 몸이 힘드니까 머리 속의 대화가 끊어지고 마음이 편해지죠. 우리가 힘든 게 머리속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잖아요. 뛸 때는 뛰는 것에만 집중해요."
"성공했다는 생각 안 들어, 하나 성취해도 다른 쪽으로 전진할 것"
▶에너지업계 종사자로서 산업 전망은 어떻게 보세요.

"요새 핫 한게 신재생에너지 쪽이랑 그에 관련된 기술들이죠. 아까 이야기한 스마트미터, 분산형 전력 생산시설 등이요. 실제로 미국에서 활발해요. 그리고 마이크로그리드, 집에 발전기기가 있어서 태양열이든 뭐든 자기가 자급자족하고 남는 건 송전을 하는 것도 증가추세에요. 풍력 태양광은 앞으로도 꾸준이 성장할 것 같아요. 안정적이죠. 정부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어요. 수익도 꾸준히 내고요. 앞으로 파리협약도 있고 중국도 5개년 계획서 신재생에너지 한다고 했고요. 결국 '친환경에너지로 발전되는 발전원'들이 늘어야하니까 신재생에너지도 회사들과 그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회사들에게는 호재죠. 장기적으론 좋을 거 같아요."

▶미국 오신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성공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아직 진행 중이에요. 성공했다는 생각은 평생 안 들 것 같아요. 관심사가 많아서 하나를 성취한다고 해 다른 쪽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고요."

▶인생의 목표라고 할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요.

"마음의 평화. 그냥 조급해하지 않고 사는 삶, 즐기면서 사는 것, 하는 거를 즐기면서 살고 싶어요. 예전엔 제가 모난 돌이었다면 지금은 미국 생활을 통해서 둥글둥글해진 것 같아요. 예전엔 자존감이 높다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거나 그런 것도 있었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경력의 목표는 에너지 스타트업이나 벤쳐쪽 일을 해보는 거고 개인적인 삶의 목표는 요리를 배워서 취미로 하는 식당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서 요리할 기회가 없었는데 미국에 와서 이것 저것 만들다 보니 요리실력이 늘었어요. 요리하는걸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됐고요."

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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