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중대재해법 '가이드북' 내놨지만…"여전히 모호"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5개월을 앞두고 가이드북을 내놨지만 “규정이 모호하다”는 경영계의 우려를 불식시켜 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가이드북은 지난달 9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의 발표에도 내용이 불확실하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의미를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 발간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적절한 예산’, ‘적정한 비용’ 등 애매한 문구에 대한 해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부는 29일 120페이지에 이르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가이드북’을 배포했다. 경영계로부터 '불명확하다'고 가장 많이 지적 받은 ‘사업주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의 구체적 의미를 밝히기 위함이다. 고용부는 시행령안 발표에도 이어지는 비판에 하반기 중 가이드라인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가이드북은 안전보건 관리체계구축을 위한 7가지 핵심 요소를 제시한 후 요소별로 실행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도급·용역·위탁 시 안전보건 확보’ 항목에서는 ‘산업재해 예방 능력을 갖춘 (하청) 사업주 선정’을 실행전략으로 제시하되, 실행 방법으로 ‘(하청에) 충분한 비용과 작업기간 보장’, ‘안전보건 확보가 어려우면 계약하지 않을 것’ 등을 안내하고 있다.

고용부가 제시한 핵심 요소는 △경영자 리더십 △근로자 참여 △위험요인 파악 △위험요인 제거·대체 및 통제 △비상조치계획 수립 △도급·용역·위탁 시 안전보건 확보 △평가 및 개선이다. 이는 올해 고용부가 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설업체 본사에 대한 특별감독 등을 통해 수차례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기업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내용은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기업들이 기대한 내용은 ‘적절한 안전보건 예산’, ‘적정한 안전보건 관리비용’, ‘적정한 업무 수행 기간', ‘안전보건 관련 법령’ 등 시행령에 담긴 애매한 문구를 해석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며 “이에 대한 설명이 없어 궁금증을 해소시키기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도 “건설업 발주자에게도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애매했는데 가이드북도 이를 제대로 짚어 주지 않았다”며 “일차적으로 법과 시행령안이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아직 법 시행 전이라 선례가 없는 상황인만큼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 관계자는 “안전보건 전담조직의 구성방식이나 인원수 등 기다렸던 부분은 여전히 공백”이라며 “어렵게 가이드북 기준을 맞춘다고 처벌받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어, 정부가 안전보건 관리체계 인증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에게 큰 틀을 안내하고 위험요소를 자체점검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한 점은 의미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영만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재해 유형별로 기업이 갖춰야 할 안전조치를 정리해 준 것은 중소 제조업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변호사도 “대기업 안전보건 전담조직을 가급적 경영자 직속 기구로 배치하라고 안내한 점 등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권기섭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중소기업 경영자가 여건에 맞는 안전보건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안전보건관리 자율점검표를 배포하는 등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