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마켓 리더 -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서범세 기자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서범세 기자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활발한 강연과 유튜브 활동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금융인이다. 그가 국내 투자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사건 중 하나는 지난 2019년 국내 최초로 여성 비율이 높은 회사에 투자하는 ‘메리츠 더우먼펀드’ 출시였다. 공고한 남성 중심의 유리천장을 깨뜨리려는 시도로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더우먼펀드는 다양성과 유연성을 갖춘 회사가 성장성이 높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지난 8월 25일 만난 존 리 대표는 “아직도 한국 사회는 인식 측면에서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을 어떻게 보십니까.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생기면서 ESG가 부각됐습니다. 원래 ESG는 종교의 윤리 투자에서 시작됐죠. 죄를 짓는 건 하지 말자며 담배, 술, 무기 등에 투자하지 않는 약속이었죠. 2000년대부터 연기금 등에서 사회 책임을 고려해 투자하자는 운동이 시작됐고, 환경·사회적 이슈를 고려하지 않는 곳에는 투자하지 말자고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했죠. 기업이 ESG를 고려하지 않으면 투자하지 못한다고 못 박은 것으로, 기업으로선 생존의 문제입니다.”

- 국내 기업이 가장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한국은 E(환경)만 생각합니다. S(사회)와 G(지배구조)는 꼴찌 수준이죠. S는 소셜인데, 사회적으로 평등함을 의미합니다. 성 평등, 인종 평등 같은 것이죠. 미국이나 유럽은 과격할 만큼 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사회에 백인만 있다는 건 뒤떨어진 회사라는 뜻이죠. 더 나아가 성적소수자도 얼마든지 허용할 정도입니다. 한국은 아직 S에 대한 인식이 낮습니다. 인종차별은 없는데, 남녀 차별은 여전합니다. 아직도 우리가 남녀 갈등을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젠더 이슈라는 말을 하는데, 촌스러운 얘기입니다. 젠더 이슈가 아니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성을 배려의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여성·남성을 가를 게 아니라 하나의 성으로 봐야 합니다.”

- 더우먼펀드를 업계 최초로 내놓으셨죠.

“더우먼펀드를 만든 이유는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한 회사에 투자해야 돈을 잘 벌 것이라는 가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해외의 경우 여성 임원을 쓰는 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월등히 높습니다. 이사회와 고위직에 여성이 들어가 있고요. 이 펀드는 5년 됐는데, 구조도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보통 펀드는 잘 팔려도 CEO가 바뀌면 없어질 수 있어요. 이 펀드는 우먼펀드의 이사가 따로 있고 펀드의 존속을 이사들이 결정하게 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여성 관련 펀드가 있지만, 아시아는 일본만 있고 다른 곳은 없어요. 이 펀드에 현재까지 300억원이 모였죠. 사실 작은 돈이 아니에요. 그런데 연기금 등 주요 기관을 찾아봤거든요. 안타깝게도 단 한 군데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펀드 운용역이 모두 남성이잖아요. 다행히 많은 개인이 펀드에 가입했어요. 300억원이 넘었으니까. 개인들이 300억을 모은다는 건 쉽지 않죠. 1만원, 3만원씩 모아서 넣어주셨습니다.”

- 외국은 임직원 여성 비율을 어떻게 높이고 있나요.

“일본은 아베 정권이 공적연금펀드(GPIF)에 여성 지수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여성 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은 투자를 금지했어요. 공적연금이 여성 지수가 높지 않은 기업은 투자를 못하게 한 거죠.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여성 비율을 높여야 하거든요. 일본은 그동안 임직원 여성 비율이라든가, 여성 승진율에서 전 세계 꼴찌였어요. 이제 일본이 꼴찌에서 벗어났으니 한국이 꼴찌입니다. 제가 강의를 나가면 하는 말이 있는데, 한국에 필요한 것 3가지가 금융 개혁, 창업가 정신, 여성의 사회 진출입니다. 한국은 외형적으로 경제력은 매우 발달했지만,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투자를 죄악시하는 금융 문맹이 심각하고, 창업 비율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도 낮습니다.”

- ESG 투자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고 계십니까.

“환경은 너무나 보편화되어 투자할 때 꼭 체크하는 것 중 하나죠. 또 이 회사가 얼마만큼 사회 분야에 민감한지 살펴봅니다. 옛날 방식만 고집하는 기업은 도태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ESG와 관련한 펀드가 70~80% 정도 됩니다. 이미 투자하는 조건에 들어가 있는 거죠. 이 회사가 어떤 노력을 하는지, 어떻게 투자를 하는지 투자 회사들은 이미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배구조도 중요하게 봅니다. 투명하지 않은 기업은 주가가 안 올라갑니다.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는 상대적으로 많이 취약하죠. 대주주가 잘못하는 것도 옹호하는 이상한 논리가 많습니다.”
“가장 먼저 경영진을 봅니다...ESG가 평가 기준이죠”
- ESG 경영에서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대부분의 기업이 말로는 ESG 경영을 하고 있어요. ‘우리 회사는 환경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포장지를 친환경 소재로 바꿉니다’라면서 석탄 캐는 사업을 매각한다든지 하는 거죠. 문제는 진의를 확인할 길이 없고, 애매하기도 합니다. ESG 경영을 잘한다지만 장식품이 될 가능성이 크죠. 펀드매니저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집니다. 그렇다고 규제 형태로 하면 안 되고요, 규제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기업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기회를 많이 주겠다며 여성 임원을 늘렸다는데, 알고 보니 중요한 자리는 남성이 차지하고 여성은 허울뿐인 경우도 있습니다.”

- 투자자에게 ESG 투자와 관련해 팁을 주신다면.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면 ESG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식투자에서 돈을 버는데 왜 ESG가 중요하지? 물어보시는데, 단기적으로 수익만 볼 수 있지만 경영진을 이해하는 게 가장 중요한 리서치입니다. 경영진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경영진을 평가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ESG입니다. 환경에 대해 어떤 전환적 관점을 갖고 있는가, 사회를 바꾸는 데 노력하는가, 여성 비율이 높은가. 그런 데 열려 있는 회사는 잘될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기업을 볼 때 매출이나 경쟁력·기술력보다 중요한 것이 경영진의 자질입니다. 경영진에 문제가 있으면 사서는 안 됩니다.”

- ESG 상품을 만들 계획이 있으신가요.

“무늬만 ESG인 상품은 만들고 싶지 않고, 필요할 때 하려고 합니다. ESG 경영을 해서 실제로 부가가치가 나타나는 회사에 투자하는 펀드나, 부분적 형태지만 우먼펀드 같은 걸 또 만들 수도 있어요. 올 10월에 액티브 ETF를 준비하고 있고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고 기술력이 발전하기 때문에 펀드도 그쪽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5G, 메타버스 등 정신없을 정도로 변하고 있죠. 선택의 다양성이 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 국가적 수준의 ESG 과제는 무엇일까요.

“교육이 S의 핵심이죠. 기업만이 아니라 개인도, 국가도 ESG를 중시해야 합니다. 기업만 거버넌스가 있는 게 아니라 국가적으로는 사회적 거버넌스가 있죠. 성 평등 문제도 거버넌스입니다. 문제를 푸는 열쇠는 교육입니다. ESG는 편견을 깨뜨리는 것에서부터 옵니다. 과거의 동질적 문화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늘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