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원유(原乳)가격 연동제를 8년 만에 개편한다. 수요 감소를 고려하지 않고 생산비 증가만을 반영하는 가격결정 구조가 우유 가격 상승을 부추겨 소비자와 우유회사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유업체와 소비자들은 제도 개편으로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낙농가들은 당장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원유가격 결정할 때 수요 반영

"뛰는 우윳값 잡자"…정부, 原乳가격체계 '손질'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가, 우유업계 등은 25일 박영범 농식품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낙농산업발전위원회’를 발족했다. 이날 오후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첫 회의에서는 원유가격 결정 및 거래 체계 개선, 생산비 절감 및 생산구조 전환, 정부 재정 지원, 낙농진흥회 의사결정 체계 개편 등이 논의됐다.

위원회는 생산비만 반영하고 있는 원유가격 연동제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 2013년 도입한 원유가격 연동제는 통계청이 발표하는 우유 생산비를 근거로 산출하는 기본가격에 유성분·위생등급에 따라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더해 원유가격을 정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원유 기본가격은 L당 926원, 인센티브는 157원으로, L당 원유가격은 1083원이었다. 올해는 기본가격이 21원 올라 이달부터 적용되고 있다.

정부는 원유가격 연동제가 수요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국산 우유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원유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라 시장의 수급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김인중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지난 20년간 국내 원유가격이 72% 올랐는데 시장 상황을 충분히 반영했다면 이보다 낮은 인상률이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가격이 높아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원유 L당 가격은 각각 491원과 470원으로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치즈와 버터 등 유가공품 수입이 늘어나면서 국산 유제품 점유율은 2001년 77.3%에서 지난해 48.1%로 하락했다.

정부는 원유가격 연동제에 수요 측면의 변수를 반영하는 방안을 연구용역을 통해 마련할 방침이다. 원유를 사용해 만드는 제품 종류별로 가격을 달리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력하다. 김 실장은 “음용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치즈·버터·분유 등 네 종류로 나눠 용도별 원유 수취 가격을 다르게 정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주요 국가에서 차등가격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유회사들은 원유가격에 포함되는 인센티브 기준을 변경해 L당 가격을 약 91원 낮추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소비자 “환영”, 낙농가 “반대”

낙농가가 생산한 우유를 유업체가 모두 사들여야 하는 쿼터제 역시 수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2002년 생산량 감축을 위해 쿼터제를 도입했지만 지금은 실제 생산량보다 쿼터량이 더 많은 상황이라 제도의 취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만 쿼터가 낙농가의 자산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고려해 가격결정 체계 변동과 연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오는 10월까지 낙농산업 중장기 발전 방안 초안을 마련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올해 안에 최종안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낙농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소비자와 우유회사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유업계 관계자는 “흰 우유 사업은 사실상 모든 업체가 적자를 보고 있다”며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맞게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낙농가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원유가격 인하와 쿼터제 수정 방침이 농가 소득 감소와 직결될 것으로 여겨져서다. 이승호 낙농육우협회장은 “우유업체들의 과도한 유통마진이 우유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유통마진 구조도 공개하라”고 지적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는 지난 24일 성명서를 내고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강진규/박종관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