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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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자동차 배터리(리튬이온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 성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연구 성과가 나왔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는 조재필 에너지화학공학과 특훈교수(사진)가 니켈 함량을 98%까지 높인 ‘하이니켈 양극재’ 개발에 성공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전기차 가격을 낮추면서 주행거리는 늘리는 원천기술이다. ‘마(魔)의 벽’으로 불리던 니켈 함량 94%를 돌파한 세계 최초 사례다. 실험실 수준을 넘어 상용화 직전까지 기술이 완성돼 이르면 내년 상반기 양산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전기차 값 낮추고 주행거리 늘리고

양극재 '魔의 94% 벽' 넘었다…전기차 가격 낮아지나
2차전지는 양극재(양극활물질), 음극재(음극활물질), 리튬이온 이동 통로인 전해질, (양극과 음극 간) 분리막 네 가지로 구성된다. 높은 전압을 견뎌야 하는 양극재는 2차전지 가격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양극재엔 니켈 함량이 80% 이상인 NCM(니켈·코발트·망간),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복합재가 주로 쓰인다. 비싼 코발트 함량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다. 코발트 가격이 니켈의 두 배쯤 된다. 업계에 따르면 양극재 글로벌 수요는 지난해 60만9000t에서 2030년 629만8000t으로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 에스엠랩은 코발트 함량을 1%까지 줄이고 니켈 함량을 98%까지 끌어올린 하이니켈 양극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조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에 통상 들어가는 양극재 양이 100㎏인 점을 고려하면 용량이 1600Ah 늘어나 그만큼 주행거리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행거리 증가율은 15~16%, 배터리 생산비용 절감률은 20%로 예상했다.

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충전·방전 횟수가 많아져 배터리 수명이 감소하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하는 기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극재는 합성할 때 소재 표면에 있는 리튬을 물로 씻어 제거하는 공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다른 필수 원소까지 씻겨나가 성능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는데 이를 해결한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 열었다

양극재 '魔의 94% 벽' 넘었다…전기차 가격 낮아지나
98% 하이니켈 양극재는 국내외 어느 기업도 극복하지 못한 기술적 한계를 돌파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내 배터리 3사(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는 지난 6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지산업협회가 연 ‘더 배터리 콘퍼런스’에서 이론적으로 양산 가능한 양극재 니켈 함량을 94%로 제시했다. 조 교수는 “해외 한 자동차 기업에 직접 납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내년 1분기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하루 20㎏ 수준인 생산능력을 2023년 7월까지 연 2만1600t으로 늘릴 계획이다.

삼성SDI 책임연구원 출신인 조 교수는 2014년부터 ‘삼성SDI-UNIST 미래형 2차전지 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 에스엠랩은 조 교수가 2018년 7월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하이니켈 양극재를 단결정으로 생산하는 원천기술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갖고 있다. 상용 양극재는 여러 금속 입자가 뭉쳐진 다결정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는 셀(cell) 형태 공정 과정에서 깨지거나 불순물이 생기기 쉽다. 단결정 양극재는 이런 단점이 없다. 다결정보다 배터리 수명을 최대 30%가량 늘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엠랩은 지난해까지 한국투자파트너스, 스틱벤처스 등으로부터 640억원을 투자받았다. 최근 450억원의 상장 전 자금유치(프리-IPO)를 성사시켰다. 내년 7월 기술특례로 상장할 예정이다. 주관사는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이다.

98% 하이니켈 양극재 개발로 당장 국내 시장 지각변동도 예상된다. 현재 하이니켈 양극재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기업은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다. 이들 기업은 아직 니켈 함량이 90% 이상인 양극재 양산에 이르지 못했다. 에코프로비엠은 SK이노베이션과 손잡고 양극재 니켈 함량을 94%까지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