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본사.  /사진=연합뉴스
도요타 본사. /사진=연합뉴스
세계 2위 자동차 업체 도요타가 업계의 전동화 전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이브리드카와 수소자동차에 집중하다 전기자동차 개발에 늦어 역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달리 당장 내세울 만한 전기차 라인업이 없다. 이에 미국 의회에 로비를 시도하는 등 전기차 시대 전환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시간 벌기'에 들어갔지만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산업 판도 급변 속 시간 벌기 나선 도요타

C-HR, IZOA 전기차.  /사진=도요타 홈페이지
C-HR, IZOA 전기차. /사진=도요타 홈페이지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최근 도요타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 전기차 시대를 맞아 시간 벌기에 나섰다.

우선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작업에 돌입했다. 뉴욕타임즈(NYT)는 도요타 고위 간부인 크리스 레이놀즈가 미 의회 지도부 인사부와 비밀리에 접촉해 바이든 행정부의 수십억 달러 규모 전기차 투자 단행을 견제할 것을 로비했다고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이와 동시에 프리우스와 같은 하이브리드 차량도 친환경차 지원 범위에 포함시켜 달라는 입장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미 의회 인사들과 접촉한 것은 미국을 비롯해 영국, 유럽, 호주 시장 등에서 친환경차 규제 혹은 전기차 의무화에 맞서려는 도요타의 전 세계적인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자국 내에서도 전기차 견제를 시도하고 있다. 아키오 도요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일본자동차공업회 온라인 간담회에서 2030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를 검토하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이대로라면 일본에서 차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며 해당 정책을 재고할 것을 요청했다.

인도 정부가 2030년까지 신차 판매를 모두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목표치를 제시하자 도요타는 "실용적이지 않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인도 자동차 시장은 중국·미국·유럽에 이은 4위권 시장이다.

도요타의 행보에 대해 NYT는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가 전기차 개발에 주력할 때 도요타는 비용이 많이 드는 수소차 개발에 미래를 걸었다"며 배경을 지적했다. NYT는 전기차 시대로의 급격한 전환이 도요타의 시장 점유율과 수익에 치명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도요타 bZ4X 콘셉트카.  /사진=도요타코리아
도요타 bZ4X 콘셉트카. /사진=도요타코리아
실제 도요타에는 이렇다 할 전기차 라인업이 없다. 오랜 기간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친환경차 시장에 대응해 온 결과다. 작년 기준 전 세계 판매된 하이브리드 차량(HEV, PHEV는 제외)의 약 70%가 도요타 차량으로 집계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소차를 친환경차의 또 다른 축으로 내세우면서 전기차 투자에는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탓도 있다. 일본 자동차 업계 전반에 퍼진 보수적인 기조도 그간 도요타가 전기차에 소극적이었던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사이 다른 완성차 기업들은 전동화 파도에 몸을 실었다. 현대차·기아는 올해 초부터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한 아이오닉5, EV6 등을 내세워 글로벌 시장 선점에 힘을 쏟고 있다. 폭스바겐은 ID 시리즈, GM은 볼트 EV·EUV 등 저마다의 실탄을 확보했다.

현재 도요타가 판매 중인 전기차로는 컴팩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C-HR과 IZOA, 경차보다 작은 초소형 전기차 C+pod 뿐이다. C-HR과 IZOA는 작년 중국 시장에, C+pod는 같은 해 일본 시장에 출시돼 판매 중이다. 도요타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는 지난해 전기차 UX 300e를 유럽·중국 시장에 선보였다. 다만 C-HR과 IZOA, UX 300e는 모두 기존 내연기관차 기반 파생 전기차다. 충전시간, 1회 충전 시 주행거리, 안정성 측면에서 우위를 보이는 전용 전기차와 경쟁을 벌이기는 한계가 있다.

빨라지는 세계 3대 전기차 시계…도요타도 속도내야

최근 전 세계 거대 자동차 시장 미국과 유럽, 중국을 중심으로 전동화 전환 흐름이 가팔라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PHEV)을 비롯한 HEV도 조만간 퇴출당할 위기다. 자동차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035년 '제로(0)' 수준으로 낮추라는 정부 차원의 요구 때문이다.

HEV와 PHEV의 경우 일정량의 CO2 배출이 불가피하다. 사실상 전기차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CO2 배출에서 100%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기에 제조사들로서는 당초 세운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기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앞서 지난 4월 도요타는 중국 상하이 오토쇼에서 2025년까지 전용 전기차 플랫폼 'e-TNGA'을 기반으로 한 총 15종의 전기차 모델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중 7종은 'bZ'의 전기차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그 첫 주자는 오토쇼에서 공개한 'bZ4X' 콘셉트카로 내년 출시 예정으로 알려졌다.

도요타는 이 계획을 앞당겨야 할 판이다. 지난 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사진)은 2030년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 절반을 친환경차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같은 날 GM과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업체도 공동성명을 통해 이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도요타, 현대차 등도 지지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14일 2035년부터는 사실상 전기차를 제외한 신차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기후변화정책 종합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를 내놨다. 중국은 이미 작년 10월 발표한 '신에너지자동차로드맵 2.0'을 통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고, 순수 전기차 50%, PHEV 50%로 내연기관 차량의 공백을 채우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