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김영우 기자
2013년 10월 호주 페퍼그룹이 늘푸른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페퍼저축은행이 탄생했다. 같은해 12월 한울저축은행도 품에 안으며 덩치를 키웠다. 고추(페퍼)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재료다. 장매튜 대표를 비롯한 페퍼저축은행 경영진은 한국 금융시장에서 없어선 안 될 금융회사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로 페퍼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그로부터 8년 뒤 페퍼저축은행은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3년 70위권에 머물던 페퍼저축은행의 총자산 순위는 올 1분기 3위로 뛰었다. 1900억원으로 시작해 매년 56%씩 총자산이 증가했다. 올해는 5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79개 저축은행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까지 적자를 면치 못하던 페퍼저축은행은 지난 1분기 역대급 순이익을 기록했다. 작년 말 348억원의 순이익을 거둔 페퍼저축은행은 올해 3개월 만에 15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 속도라면 올해 적어도 600억원의 순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저축은행 신뢰 개선에 앞장서

페퍼저축은행이 이처럼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출범 초기부터 중금리 대출 시장 공략이라는 차별화된 전략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저축은행들 공히 중금리 대출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 최고금리가 연 30~40%대에 달하던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다른 저축은행들은 고금리 대출에 주력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사실상 업계 최초로 중금리 대출 시장에 진출했다.

자체 신용평가 모델을 갖추고 타사 대비 낮은 이자율로 다양한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내놨다. 지난달 말 기준 전체 가계신용대출 잔액의 78%가 중금리 대출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직장인 대상 중금리 대출이 페퍼저축은행의 주 수익원이다.

2019년 3월 모바일 앱 페퍼루를 출시하는 등 디지털 혁신에도 앞장서고 있다. ‘페퍼룰루 파킹통장’과 ‘페퍼룰루 2030 적금’ 등 비대면 전용상품을 선보여 2030세대의 인기를 끌었다. 페퍼저축은행은 페퍼루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해 풀뱅킹 업무를 할 수 있는 페퍼루2.0을 연내 선보일 계획이다.

페퍼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 전략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로 땅바닥까지 떨어졌던 저축은행업계의 신뢰를 되찾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저축은행 사태의 원인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문제였다. 중신용자의 ‘금리 단층 현상(신용등급에 따라 대출이자가 갑자기 뛰는 현상)’을 해소해 주는 중금리 신용대출은 서민금융회사라는 저축은행의 업의 본질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지난달 7일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연 20%로 내려갔다. 규정상 저축은행은 2018년 11월 이후 체결·갱신된 고금리 대출 건에 대해서만 금리를 연 20% 이내로 조정해 주면 됐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2018년 11월 이전 대출도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하해주겠다고 지난 6월 발표했다.

ESG 경영 선두주자로 꼽혀

페퍼저축은행은 업계 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선두주자로도 꼽힌다. 금융권에서 ESG가 화두로 본격 떠오르기 전인 지난해부터 ‘페퍼 그린 파이낸싱’이란 녹색금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녹색 건축물을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는 개인사업자와 수소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는 고객에게 금리 인하 혜택을 주는 등의 프로그램이다. 지난달 기준 페퍼 그린 파이낸싱을 통한 대출액은 800억원을 넘어섰다.

사회공헌 활동도 적극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해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생들에게 1억4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를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위로하기 위해 ‘싱투게더’란 음악예능 프로그램 제작도 지원하고 있다. 싱투게더는 소상공인 출연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음악 공연을 하고 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페퍼저축은행의 경영 원칙은 ‘사람 중심’이다. 2017년부터 307명의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사람 중심 경영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임직원에게 업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주고 있으며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일곱 번째 여자 프로배구단 창단

국내 스포츠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도 힘쓰고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올해 일곱 번째 여자 프로배구단을 창단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보여줬던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투혼 감동을 프로 경기에서도 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에서 활동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골퍼들도 후원하고 있다.

2001년 설립된 페퍼그룹은 호주와 한국, 중국, 유럽, 홍콩 등에서 사업을 하는 글로벌 금융회사다. 페퍼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관리자산은 68조원, 대출 자산은 17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페퍼저축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페퍼그룹은 한국 시장의 성장세가 크다고 보고 페퍼저축은행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페퍼저축은행은 경기와 인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영업하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 본점을 포함해 5개 지점(분당, 부천, 안산, 광주, 전주)을 운영하고 있다. 모바일뱅킹 페퍼루 고도화 등을 통해 디지털 영업을 강화해 저축은행 ‘톱3’ 지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 페퍼저축은행의 구상이다. 장매튜 대표는 “수익성과 균형, 튼튼한 재무구조, 사람 중심 등 4대 경영원칙에 따라 성장을 이어나갈 것”이라며 “‘페어’하고 ‘퍼펙트’한 ‘페퍼 금융’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