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중심으로 한정판 제품을 사고파는 리셀 시장이 하나의 재테크로 주목받고 있다. /한경DB
2030세대 중심으로 한정판 제품을 사고파는 리셀 시장이 하나의 재테크로 주목받고 있다. /한경DB
“1000만원 모았는데 아직도 부족하네요. 구매금 마련을 위해 소장하고 있는 운동화 몇켤레를 더 내놨습니다.”

운동화 마니아 윤지헌 씨(23)는 몇 달째 목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나이키와 명품 브랜드 디올이 협업해 출시한 ‘에어디올’ 운동화를 구매하고 싶어서입니다. 출시된 지 1년 남짓 지난 이 운동화의 리셀(resell·재판매) 가격은 1200만~1300만원대. 출고가(300만원)의 4배가 넘는 값이지만 중고 시장에선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입니다. 여전히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선 “정품 여부 확인되면 바로 구매하겠다”는 글이 올라오곤 합니다.

2030세대 중심으로 한정판 제품을 사고파는 리셀 시장이 어엿한 재테크로 자리잡으며 주목받고 있습니다. 원래 리셀은 ‘새 제품에 가까운 물건을 제값보다 값싸게 판매하는 중고거래 행위’를 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희소성이 높은 한정판 제품이 주로 거래되면서 정가보다 비싸게 사고파는 소비 행태로 변모했습니다.

21만원 GD 신발이 1300만원

리셀 시장도 여러 형태로 구성돼 있습니다. 한정판 품목이 다양해지고 있어서입니다. 최근 명품 인기가 높아지면서 급부상한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롤렉스+제테크)에서부터 스니커테크(스니커즈 운동화), 레테크(레고), 스벅테크(스타벅스MD)도 있습니다.

리셀시장에서 인기 있는 품목은 단연 운동화입니다. 중고 물품은 출시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거래된다는 통념은 한정판 운동화를 주고 파는 중고 시장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한정판은 적게는 10~20%, 많게는 10~20배까지 웃돈을 받고 되팔수 있습니다. 윤 씨가 사고 싶어하는 ‘에어 조던1 하이 OG 디올 리미티드 에디션’의 경우 전 세계에 4700족만 유통된다는 희소성이 특징입니다. 이 상품은 한때 리셀가가 30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정가 300만원에 이 상품을 구매한 이들은 많게는 2700만원까지 번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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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 운동화’로 알려진 나이키의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제품 권장 소비자가는 약 21만원이지만 리셀가는 최근 1300만원까지 올랐습니다. 출시 당시 매장 앞에서 평균 4시간 넘게 줄을 서서 응모권을 제출한 사람 등을 대상으로 추첨 판매했기 때문에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았던 제품입니다. 미국 중고의류 업체 스레드업에 따르면 2019년 20억 달러(2조2500억원)에 불과했던 글로벌 스니커즈 리셀 시장 규모는 2025년 60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샤넬백, 되팔면 1200% 수익률

명품 리셀 시장은 코로나19 위기도 비켜가고 있습니다. 구매에 성공하기만 해도 수십만~수백만원대의 시세 차익을 남긴다는 샤넬을 사기 위해 리셀러들은 매일 매장 앞에서 몇 시간씩 줄을 섭니다. 최근 샤넬이 가격을 인상하면서 리셀러들은 더욱 기승을 부렸습니다. 샤넬은 지난달부터 가격을 최대 14% 올렸습니다. 대표 상품인 샤넬 클래식 스몰은 13.8%(785만원→893만원),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클래식 플랩백 미디움은 12.5%(864만원→971만원), 클래식 라지는 11.4%(942만원→1049만원) 올랐습니다.

인기 상품 가격이 하루 만에 100만원 넘게 뛰자 리셀러들이 가격 인상 직전 구입한 제품을 중고시장에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7일 한 명품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샤넬 클래식백 미디엄(은장)이 최고 1100만원에 나와 있었습니다. 리셀러들은 대개 상품권 유통상에서 백화점 상품권을 2.8~3% 정도 싸게 구매한 후, 이 상품권으로 명품을 구입합니다. 이렇게 하면 864만원짜리 클래식 미디엄을 838만원가량으로 구입할 수 있고, 이를 며칠 뒤 중고 사이트에서 1000만원 정도로 되팔면 차익이 162만원, 수익률 19.3%가 되는 겁니다.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 /한경DB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 /한경DB
서울 잠실에 사는 회사원 고유미 씨(35)는 “처음엔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새벽부터 백화점 밖에서 줄 서 힘들게 300만원대 보디크로스 미니백인 WOC 제품을 구매했지만 중고거래에서 비싸게 거래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35만원 더 붙여 처음으로 리셀 거래했다”며 “아침 일찍 선착순 줄을 선 수고비 차원에서 하루 일당을 벌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자본·지식 없어도…누구나 할 수 있어

몇 만원대로 비교적 접근이 쉬운 스벅 증정품 리셀도 시세 차익이 쏠쏠합니다. 스타벅스의 증정품은 매년 ‘굿즈(goods·상품) 대란’을 일으키며 리셀시장을 뜨겁게 달굽니다. 올해 여름엔 특히 핑크색과 초록색 아이스박스인 ‘서머 데이 쿨러’가 인기였습니다. 쿨러가 풀린 첫 날(5월11일)엔 중고가격은 9만원까지 뛰었습니다. 비매품이라 부르는 게 값인데 호가는 15만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매장에서 구매하는 데 필요한 최소 비용이 대략 7만원(에스프레소 14잔+계절음료 3잔)선 임을 고려하면 적기에 리셀할 경우 2만원의 수익을 남깁니다.

이처럼 갈수록 리셀 시장이 커지는 것은 희귀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핵심 수요층인 2030 세대는 남들이 갖지 못한 제품을 나만 소유했다는 인증을 위해 기꺼이 비싼 값을 지불합니다.

진입장벽도 낮습니다. 리셀은 전문지식과 큰 자본이 없어도 누구든 할 수 있습니다. 제품을 온라인 중고거래 커뮤니티,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올려 놓고 댓글, DM(다이렉트 메시지) 등을 통해 거래만 하면 됩니다.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서 한정판 운동화를 응모하는 방식으로 종종 리셀을 하는 자영업자 이승호 씨(33·가명)는 “발품만 잘 팔면 주식이나 펀드보다 안정적이고 적은 비용으로도 투자가 가능하다”며 “상품에 따라 수익은 차이가 있지만 아직까지 리셀을 해 손해를 본 적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지드래곤 운동화’로 알려진 나이키의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한경DB
‘지드래곤 운동화’로 알려진 나이키의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한경DB
리셀의 성장 가능성을 느낀 기업들도 관련 시장에 뛰어드는 양상입니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한정판 운동화 거래 플랫폼인 ‘크림’을 출시해 리셀 시장에 진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도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을 열었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솔드아웃, 크림 등 주요 리셀 플랫폼 거래액이 폭발적으로 늘자 외부 투자 기관이 수백억원씩 투자를 진행하는 등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