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2차전지 수요 16배로"…양극재·음극재 시장 급성장 예고
‘밀물은 모든 배를 뜨게 한다’는 얘기가 있다. 2차전지산업에도 관통하는 문구다. 2차전지산업의 주요 전방 산업인 전기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2차전지 셀뿐만 아니라 장비, 소재, 그리고 최후방 산업인 메탈 자원까지 들썩이고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내연기관 중심의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은 전기차 시장 성장 전망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지난해 테슬라가 ‘배터리데이’ 행사를 한 이후 완성차업체들은 앞다퉈 EV데이 또는 배터리데이 등의 행사를 열고 2030년 전후로 100% 전동화 전략과 이를 위한 배터리 차별화 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유럽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친환경 정책 강화가 한몫하고 있다. 주요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운송 수단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및 내연기관 판매 금지 선언 등으로 인해 완성차업체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전기차 판매 비중 확대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한편으로는 국가 단위의 재원 조달을 통해 각종 인센티브와 인프라 구축에 나서는 것도 전기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배경이다.

전기차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와 전기차 판매가가 비슷해지는 ‘프라이스 패리티’ 시점이 2~3년 내로 임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의 경제적 선택을 고려하더라도 완성차업체들의 전기차 확대 전략은 당연하다. 이런 환경 변화에 따라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2차전지 수급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다.

2차전지는 얼마나 필요할까. 지난해 유럽연합이 제시한 배터리 2030 자료를 참고하면, 2030년까지 2차전지 수요는 2.6TWh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 전기차용이 2.3TWh에 달한다. 비교 시점인 2018년 시장 규모는 142GWh로 봤으니 무려 16배가 커진다고 전망한 셈이다. 최근 들어 완성차업체들이 이전보다 공격적인 전기차 확대 전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2차전지 수요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글로벌 2차전지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등 2차전지업체들도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고 있다. 유럽 등 일부 지역에서 핵심 부품인 2차전지의 현지 업체 육성에 나서고 있긴 하지만 규모의 경제 면에서나 기술 성숙도 면에서 선두업체를 따라오기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Tier 1 그룹 배터리업체들의 시장 지배력은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판단된다.

2차전지 시장 규모의 확대는 관련 소재 부문의 큰 폭 성장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다. 셀 제조비용 중에 재료비 비중이 60~70%대로 높은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차전지를 구성하는 4대 재료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액, 분리막은 재료비의 80~9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이 중 양극재는 주요 유가금속이 포함돼 40% 정도를 차지하는 주요 소재다.

양극재는 전기차용의 경우 크게 LFP와 삼원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시장 조사기관인 BNEF의 예측에 따르면 니켈 비중 80% 이상의 하이니켈계는 높은 에너지 밀도라는 장점을 바탕으로 2018년 18%에서 2030년에는 85%로 대폭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전기차용 2차전지 시장에서 하이니켈계 양극재의 성장 속도는 전방산업인 전기차 판매 증가 기울기보다 급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 2차전지 양극재업체들이 하이니켈 양극재 생산시설의 공격적인 증설에 나서는 배경이기도 하다.

음극재는 천연흑연계와 인조흑연계가 각각 밀도와 수명의 상대적인 장점을 바탕으로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증설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선 유일하게 포스코케미칼이 천연흑연에 이어 인조흑연 음극재 생산까지 준비에 나서는 상황이다. 또 최근 완성차업체들이 차별화된 배터리 기술 확보에 나서는 과정에서 실리콘 첨가제의 적용 확대가 기대된다. 실리콘 첨가제 소재 기술을 보유한 다양한 업체의 등장과 이들 업체의 생산 스케일 확대를 위한 공급망 내 다양한 협력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리사이클 시장도 2차전지산업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확대와 이에 따른 대규모 2차전지 수요 증가는 폐배터리 급증을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폐배터리가 일정한 에너지 잔여 용량을 갖고 있고, 주요 양극재 메탈의 회수율이 90% 후반에 달하며, 이미 배터리급의 재료라는 특징이 리사이클링 시장 성장의 배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유한 자원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줄일 수 있고, 기존 채굴과 정제 과정의 환경 부담도 덜 수 있을 전망이다.

2차전지 소재 업체들은 최전방 전기차 시장의 빠른 성장과 함께 생산량 확대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고, 전방 시장의 안정적인 고객 확보와 더불어 후방 시장의 재료 수급 및 관련 자원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시장 내 경쟁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