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수합병(M&A)이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하는 가운데 일부 중견기업은 사모펀드(PEF)와 함께 최대 ‘바이어’로 떠올랐다.

승계 구도를 일찌감치 정리한 중견기업들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대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양상이다. 자녀가 여러 명인 경우 승계를 위한 교통정리를 목적으로 기업을 사들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편에서 승계에 따른 어려움으로 기업 매물이 쏟아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호반기업과 글로벌세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은 최근 나란히 두산공작기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그간 M&A 시장 단골 손님이었지만, 막바지에 항상 의사결정을 못 내리던 호반건설은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변했다. 장남 김대헌 사장 중심으로 승계구도가 정리되자 공격 경영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차남 김민성 상무의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이미 대한전선 인수로 시동을 건 데 이어 두산공작기계까지 품으면 형제간 독립경영 구도가 완성될 것이란 전망이다. 글로벌세아도 김웅기 회장(70)이 고령에 접어들자 2세를 중심으로 승계 작업이 한창이다.

중견 건설회사인 중흥건설은 최근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인수 주체는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의 장남인 정원주 중흥건설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중흥토건이다. 자연스럽게 승계구도가 완성될 것으로 보인다. 성정그룹도 이스타항공 인수에 성공할 경우 형남순 회장의 장남 형동훈 사장과 장녀 형선주 씨 간 승계구도가 간명해질 수 있다. 승계 고민을 앞둔 SM그룹도 최근 쌍용차 인수에 뛰어들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보광그룹, 하림그룹, 세아그룹 등 비슷한 승계 문제가 거론되는 알짜 중견회사들이 하반기 M&A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전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들 중견사가 선호하는 승계 목적의 인기 매물은 성장성보단 꾸준한 현금 창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경영진 역량과 크게 관계없는 안정적 업종이 1순위로 꼽힌다. 인지도를 쌓아둔 리테일 분야, 안정적 고객군이 확보된 케이터링 업체, 반도체·2차전지 등 성장성이 뚜렷한 분야에 필수 소재·장비 등을 납품하는 중간공급재 기업 등이 선호 사업군으로 꼽히고 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