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이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는 모습. 사진=한경DB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산저축은행 예금자들이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금융감독원 부산지원 앞에서 집회를 갖고 있는 모습. 사진=한경DB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한 주범인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가 7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10년 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동산 PF 대출 잔액 규모(4조3000억원)를 크게 뛰어넘은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될 경우 한순간에 대규모 부실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시기가 다가오는 데다, 정부가 주택가격 안정화를 위해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총동원하고 있는 만큼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3일 <한경닷컴>이 금융감독원에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6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저축은행 사태 직후였던 2011년 말 부동산 PF 대출 잔액 규모인 4조3000억원에서 2조6000억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전체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별도 공시하지 않는 자료로, 2020년 말 기준 관련 대출 규모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저축은행 사태 이후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014년 상반기 1조7000억원으로 최저점을 기록한 뒤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후 부동산 경기가 본격 살아나면서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2018년 말 기준 5조2000억원까지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2년 만에 또다시 1조7000억원이 급증해 7조원대를 목전에 뒀다.

부동산 PF 대출은 부동산 프로젝트를 담보로 장기간 대출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 부실 위험이 커진다. 때문에 2010년 부동산 PF 대출을 공격적으로 키운 저축은행 30여곳이 부동산 시장 침체 국면과 맞물려 파산하거나 인수·합병 시장에 내몰린 바 있다.

당시 저축은행 사태 전까지 부동산 PF 대출은 부동산 호황기 영향으로 저축은행에 막대한 수익을 남겼다.

현시점에서도 조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11년 저축은행 업계의 영업정지 사태 시발점이 된 만큼 부동산 PF 대출 급증이 대규모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이 가시화된 데다, 정부가 주택가격 안정화를 목표로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는 만큼 부동산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조만간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통상적으로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총재는 지난달 1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코로나가 재확산하고 있지만 경기 회복세, 물가 오름세 확대, 금융 불균형 누적 위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다음(8월) 금통위 회의부터는 통화정책 완화 정도의 조정이 적절한지 아닌지 논의하고 검토할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정부 여당은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연일 규제 강화에 고삐를 죄고 있다.

전날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택 양도차익에 맞춰 장기보유특별공제율에 차이를 두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것으로, 늦어도 개정안 적용 시점인 2023년 1월 이전까지 똘똘한 한 채만 남기고 나머지 부동산을 처분하라는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민주당은 늦어도 9월에는 해당 개정안을 국회 본회의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산저축은행이 금융당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하자 계열사인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2저축은행에 예금자 수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모습. 사진=한경DB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산저축은행이 금융당국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하자 계열사인 부산 해운대구 우동 부산2저축은행에 예금자 수천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는 모습. 사진=한경DB
확연한 증가세를 보이는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관리가 필요한 대목.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장 부동산 호황기에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겠지만 금리 상승기가 되면 부동산 PF 대출 증가세가 경제 악화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며 "부동산 조정이 바로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금리 상승 자체가 시중 유동성에 영향을 준다. 관련 대출 관리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특히 수요가 많지 않은 비수도권의 경우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면 저축은행이 회수 안 된 부실 PF 대출을 떠안을 소지가 있다"며 "금융기관에서 전반적 위험 관리 차원에서 부동산 PF 대출 증가세를 면밀히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도 "현재 부동산 가격이 정점에 다다랐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은 만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증가세는 유의해야 하는 요소"라며 "부동산 가격이 조정 국면에 진입할 경우 관련 대출이 그대로 손실로 잡힌다. 금융권에서 부동산 PF 대출 증가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긴 어렵지만 부동산 하락세가 시작될 수 있는 만큼, 지금부터 부동산 PF 대출 증가세 관련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동산 PF 대출 증가세와 관련해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PF 대출 규모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지금은 저축은행 사태 당시와 같이 리스크가 큰 대규모 사업장이 아닌 다세대 연립주택 등 소규모를 주를 운영하고 있다"며 "이전처럼 큰 문제를 발생시킬 우려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