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승계' 장수기업 키우자
(9) 끝·기술名家로 큰 승계기업

'국내 유일 볼펜 잉크社' 유엔아이
獨 파버카스텔·佛 BIC에 쓰여

소방방재업계 1인자 한방유비스
삼성·현대車 등 용역 휩쓸어
유엔아이의 경기 시흥 공장에서 한 직원이 잉크 재료를 옮기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유엔아이의 경기 시흥 공장에서 한 직원이 잉크 재료를 옮기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63년 역사의 유엔아이는 국내 유일한 볼펜용 잉크 제조회사다. 독일 일본 등과 경쟁하는 세계 3대 볼펜 잉크 제조업체다. 260년 역사를 지닌 세계적 필기구 제조회사인 독일 파버카스텔과 프랑스 빅(BIC) 제품에 이 회사의 잉크가 들어간다. 이 회사 경쟁력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기업승계를 통한 오랜 ‘책임경영’이 꼽힌다. 중소기업 경영 여건상 승계에 따른 오너경영 체제가 매출 영업이익 기술경쟁력 등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는 점에서다.
승계기업 매출·고용 월등히 높아
유엔아이 창업주인 고(故) 민병일 대표는 1958년 안료 염료 등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도매업을 시작했다. 1988년 2세인 현 민홍기 대표가 회사를 이어받으면서 일본 수입에 의존하던 안료 기술의 국산화에 나섰다. 1997년 필기용 잉크시장에 뛰어들어 현재 팬시용 볼펜 잉크시장에선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다.

이 회사의 최근 5년간 연평균 매출은 200억원 규모다. 1988년 민 사장이 승계할 당시 매출(20억원)보다 30여 년 만에 10배로 증가했다. 민홍기 대표는 “해외 유명 기업 대부분이 승계를 이어온 한국 장수기업과 거래하기를 원해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74년 역사의 한방유비스도 마찬가지 사례다. 국내 소방설비 설계·감리·방재연구분야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소방 엔지니어링업계 1위 기업이다.

창업주인 고(故) 최금성 회장은 1947년 국내 최초 소방기업인 ‘조선소방기재’를 설립했다. 창업주의 차남인 최진 현 한방유비스 회장은 1992년 회사 대표로 취임했고, 2017년엔 최진 회장의 차남인 최두찬 대표가 취임했다. 이 회사는 서울 삼성동 현대자동차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비롯해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타워 등의 소방 설비 용역을 맡아 초고층빌딩 시장에서 강점을 보였다. 국내 삼성전자 반도체공장도 대부분 이 회사가 소방 설비 용역을 담당했다. 매출은 2016년 123억원에서 지난해 말 211억원으로 4년 만에 71.5% 급증했다.

최두찬 대표는 “소방기업은 단 한 번의 작은 실수만 나와도 대표가 형사처벌을 받기 때문에 웬만한 사명감과 전문성 없이는 경영하기 어렵다”며 “대를 이어 배운 기술과 노하우가 수십 년간 축적돼야 경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무거운 상속·증여세가 걸림돌
중소기업중앙회가 국내 명문 장수기업 중 가업승계 기업 12개를 대상으로 일반기업과 경영 성과를 비교한 결과, 명문 장수기업의 매출은 일반 중소기업보다 약 9배, 고용인원은 약 8배, 연구개발비 비중은 약 2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 명문 장수기업은 중소기업 경영의 가장 큰 리스크가 상속·증여세라고 입을 모았다. 과도한 세율(최고 50%)과 까다로운 공제 요건 때문이다.

민 대표는 “1988년 상속했을 당시엔 상속세 부담이 이렇게 크지 않았다”며 “지금은 3세 승계를 위해 사전 증여를 하려고 해도 대출을 받아야 할 정도로 세율이 높아 회사 알짜 자산도 팔아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지분 승계 작업을 마무리한 최 대표는 “정부 연구개발(R&D) 자금이나 해외법인 출자금 등도 공제 대상에서 빠지는 점이 문제”라며 “올해 돌아오는 세금은 어떻게 낼지 고민”이라고 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중소기업은 매각(M&A)이 쉽지 않고, 대를 이어 경영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 기술과 일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인 상속·증여 세제를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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