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극자외선(EUV) 장비 확보전에서도 한국이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생산하는 EUV장비는 선폭 10㎚(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최첨단 반도체칩 생산을 위한 필수 장비다. 지금까지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가 이를 나눠 가졌지만 인텔 등 미국 기업들이 EUV 장비를 사들이면서 시장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美도 'EUV 확보戰' 가세…기술경쟁서 밀리는 K반도체
27일 ASML의 상반기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매출에서 미국 비중이 1분기 3%에서 2분기 6%로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9300만유로(약 1261억원)에서 1억7400만유로(약 2359억원)로 급증했다. 반면 한국과 대만의 매출 비중은 줄었다. 한국은 1분기 44%에서 2분기 39%로, 대만은 43%에서 36%로 감소했다. 시장에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인텔이 확보전에 뛰어들면서 1년 내에 점유율이 두 자릿수로 성장하며 한국 업체의 물량 확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ASML의 EUV 생산능력이 연간 40대에 불과해 한두 업체만 ‘발주’ 경쟁에 뛰어들어도 시장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더구나 EUV는 생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반도체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이 EUV 장비를 누가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판가름 날 정도다.

대당 2000억원에 육박하는 EUV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활용된다. 기존 장비보다 훨씬 얇게 회로 선폭을 그릴 수 있어 EUV를 활용하면 같은 크기의 웨이퍼 안에서 건져낼 수 있는 칩 수가 기존 장비보다 20~30%가량 많아진다. ASML이 2분기에 신규로 수주한 EUV 장비만 해도 40억유로(약 5조4200억원)에 달한다. 전체 수주 잔량은 175억유로(약 23조7400억원)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그만큼 생산이 밀려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향후 필요한 EUV 장비 확보와 관련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2019년 이후 삼성전자가 EUV 장비 확보를 위해 전방위로 나서면서 ASML 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정기적으로 ASML 경영진과 접촉해 차세대 반도체의 미세 공정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해 10월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기도 했지만 이 부회장이 올해 초 법정 구속되면서 교류가 끊겼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EUV는 부품 형태로 현지 공장에 들어오기 때문에 조립 시간 등을 감안하면 제조 후 생산에 투입되기까지 2년가량 걸린다”며 “지금 발주해도 일러야 2026년에나 장비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