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인노무사회(노무사회)가 지난달 말부터 법무법인(로펌) 소속 공인노무사들에게 직무개시 등록증 발급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 로펌들이 노무사를 대거 영입하며 기존 노무 시장을 침범하자 ‘반격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노무사회는 앞으로 로펌 소속 노무사나 로펌에 입사하려는 노무사가 직무개시 등록증 발급을 신청해도 이를 거부할 방침이다. 등록증이 없는 노무사는 중앙노동위원회 등 노동위원회 사건과 노동청 진정 사건 대리 등 주요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최근 성장세인 노무 시장을 둘러싼 노무사와 변호사 간 직종 갈등이 자칫 기업, 피해 근로자 등 법률 민원인들의 불편과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로펌 견제 나선 노무사회

노무사회가 로펌 소속 노무사에게 발급을 중단한 직무개시 등록증은 일종의 ‘대리업무 허가서’다. 변호사로 비유하면 의뢰인을 위해 법정이나 경찰서에 출입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노무사회 관계자는 “로펌이 노무사를 고용해 노무사 업역을 침해하는 행태가 도를 넘었다”며 “이번 기회에 법무법인 소속 노무사에게 제한 없이 등록증을 발급하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노무사회, 로펌 노무사 업무 제한…'노·변 갈등'
양측 갈등은 노무 시장의 급성장세와 관련이 깊다. 이전까지 변호사들에게 노무 시장은 품만 많이 들고 이윤이 크지 않은 영역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노동 분야가 국정 어젠다로 자리잡고 직장 내 괴롭힘법 제정, 근로기준법·노조법 개정 등 제도 변경이 잦아지면서 노사 모두 법원으로 향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당연히 돈 되는 노동법 사건과 컨설팅도 증가했다.

노동법률 시장이 커지자 대형 로펌에는 전에 없던 노동팀이 속속 들어섰다. 최근에는 로펌이 노무사를 고용해 지원금이나 컨설팅, 심지어 기업 급여 관리 업무까지 넘보는 바람에 노무사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대형 로펌 출신인 한 변호사는 “로펌들은 고객사에 평소 사건이 없을 때는 비교적 비용 부담이 적은 노무사를 보내 컨설팅 등을 해주며 관계를 유지하고, 법원에 가야 하는 사건이 발생하면 변호사들이 등판하는 전략을 펴기도 한다”고 말했다. 로펌이 노무 업무를 전부 훑어가는 ‘저인망식 영업 전략’을 펼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양측 간 소송전으로 확산하나

노무사회의 직무개시 등록증 발급 중단 방침에 따라 로펌 소속 노무사들은 신규 직무개시 등록증을 받지 못하게 돼 당장 타격을 볼 전망이다. 예전에 발급받은 등록증이 있더라도 다른 로펌으로 이직하려면 노무사회에 소속 변경 신고를 하고 등록증을 새로 갱신해야 하는데 이 길이 막히는 것이다. 로펌으로의 이직을 알아보던 노무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로펌에 재직 중인 한 노무사는 “노무사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데 노무사회가 되려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고 있다”며 “처우가 열악한 노무법인보다 로펌으로 가길 원하는 노무사가 더 많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태가 노무사회와 로펌 간 소송전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펌 입장에서는 법원 전 단계인 노동위원회 사건까지는 소속 노무사가 담당해 주길 원하는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 법적 절차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노무사회로부터 이런 사실을 통보받지 못해 아직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다”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노무사회 감독기관인 고용노동부는 등록증 발급 행위 중단의 위법 여부를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오영민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사태 경과를 알아보고 있다”며 “검토 후 위법 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시정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