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案 돌연 철회 왜?

기재부 개정안 초안 포함됐다가
엿새 뒤 실제 발표 땐 내용 빠져
홍남기 "당정서 논의 필요 의견"
기획재정부가 26일 발표한 ‘2021년 세법개정안’에서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 물납 허용 방침을 이례적으로 철회했다. 지난해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 타계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미술품을 물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했다. 사진은 지난 21일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일반 시민에 첫선을 보인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26일 발표한 ‘2021년 세법개정안’에서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 물납 허용 방침을 이례적으로 철회했다. 지난해 10월 이건희 삼성 회장 타계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미술품을 물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했다. 사진은 지난 21일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일반 시민에 첫선을 보인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연합뉴스

지난 20일 기획재정부가 출입 기자단에 배포한 ‘2021년 세법개정안’ 보도 예고자료에는 미술품의 상속세 물납 허용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26일 실제 발표에선 관련 내용이 빠졌다. 엿새 사이에 기재부 안이 뒤집힌 것이다. 이에 대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당정협의 과정에서 심도 있는 평가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정부 안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의원 입법안으로 관련 법안이 발의돼 논의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물납은 현금이 아닌 다른 자산을 정부에 넘기고 해당 자산의 가치만큼을 세금 납부로 인정받는 제도다. 시장에서 객관적인 가치 확인이 가능한 부동산과 유가증권(비상장 주식 제외) 등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 소유의 미술품 1만2000점의 가치가 1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술품도 물납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논의에 불이 붙었다. 특히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재산의 물납을 허용하고 있으며 일본도 법률로 규정된 특정 등록 미술품에 대해 상속세 물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해외 문화강국의 세법을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는 관련 세법을 개정해 미술품 물납을 2023년 상속세 부과 대상부터 허용할 방침이었다. 물론 지난 4월 말 상속세 납부 절차를 시작한 삼성가(家)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정부는 물납이 가능한 미술품의 가치도 엄격히 규정할 계획이었다. ‘보물’ 등급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았거나 해외 유명 미술관에 전시된 작가의 작품 등이 가능하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미술진흥법 제정안’에 따라 설립될 미술품감정센터의 감정도 필수 요건이다.

이 같은 정부의 계획이 어그러진 것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부자들을 위한 세법 개정’이란 반발이 강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관계자는 “미술품 물납은 부자들 중에서도 일부 고액 자산가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인 만큼 관련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국민의 공감대도 높아야 한다”며 “정부 법안으로 성급하게 처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했다.

문체부의 미술품감정센터 설립과 관련한 법안 처리가 지지부진한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센터 운영을 둘러싼 이해 관계 문제 해결과 도입 방안 관련 논의가 속도를 내지 못해 미술품 물납 허용을 위한 제반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이유로 관련 의원 입법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의원 입법안을 중심으로 논의될 것”이라는 홍 부총리의 설명과 달리 올해 정기국회에서 관련 법 개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일각에선 정부가 미술품 물납 허용을 본격 거론한 만큼 향후 2~3년 내에 도입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고가 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고 미술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물납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는 미술품감정센터 등을 통한 감정가가 시장 거래가보다 높을 수 없는 만큼 부자 감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앤디 워홀의 원화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현실에서 미술품 물납은 문화강국이 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해줄 것”이라며 “특정 기업에 혜택을 주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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