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밥 신세' 5060 패션 브랜드
스타트업 플랫폼서 재기 노려

롯데 본점서 5월 말 절반 철수
신세계·현대百선 일찌감치 퇴출
고객들 '나이 무관한 상품' 찾고
백화점은 해외 명품에만 매달려

중년여성 패션앱 '퀸잇' 급성장
"감각 뽐내는 뉴 시니어 적극 공략"
카카오 등서 165억 투자 유치
토종 시니어 여성복이 백화점의 해외 브랜드 선호 현상과 젊은 패션을 찾는 중년들의 취향 변화로 백화점에서 사라지고 있다. 지난 5월 어버이날을 앞두고 서울의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한경DB

토종 시니어 여성복이 백화점의 해외 브랜드 선호 현상과 젊은 패션을 찾는 중년들의 취향 변화로 백화점에서 사라지고 있다. 지난 5월 어버이날을 앞두고 서울의 한 백화점 여성복 매장이 한산한 모습이다. 한경DB

5060 여성복 브랜드 ‘미세즈’는 한때 백화점의 ‘효녀’였다. 신세계 영등포점, 롯데 인천터미널점에서 매장당 월 1억원의 매출을 훌쩍 넘을 때도 있었다. 매출의 35~37%를 가져가는 백화점에는 효녀나 다름없었다. 미세즈는 2018년까지 10개의 백화점 매장 등 전국 18개 점포에서 연 매출 80억원을 올리는 알짜 브랜드였다. 하지만 요즘 미세즈는 롯데, 신세계백화점에서 ‘방’을 빼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송민정 미세즈 대표는 “사옥 담보 대출로 간신히 버티는 중”이라고 말했다.
백화점서 사라지는 시니어 여성 브랜드
백화점들이 명품 등 해외 브랜드에 매달리면서 토종 패션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국내 브랜드 위주인 시니어 여성복 코너가 통째로 사라질 정도다. 백화점을 찾는 중년 여성들의 눈높이가 젊은 층 못지않게 높아졌는데도 시니어 패션업체들이 기존 충성 고객에 안주해 변화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화점서 쫓겨난 중년 여성복, 모바일선 '불타는 청춘'

5060 여성 의류는 디자이너 브랜드가 많다. 패션 대기업들이 진출하지 않은 중년 여성복 시장을 개척한 디자이너들이 로드숍에서 성공을 거둬 백화점으로 진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수아, 손석화, 강희숙, 이문희 등 2010년대 초반까지 명성을 날렸던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선보였다. 백화점 업계는 60대까지는 ‘어덜트 컨템퍼러리’, 60대 이상용 브랜드는 ‘엘레강스’로 분류하기도 했다.

26일 백화점 3사에 확인한 결과, 중장년 여성용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초토화 직전이다. 일찌감치 해외 수입 브랜드 위주로 백화점 구색을 바꾼 신세계백화점은 명동 본점, 강남점, 부산센텀시티점 등 핵심 점포에서 시니어 코너를 없앤 지 오래다. 영등포점도 작년 10월 중장년 여성 코너를 뺐다. 현대백화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달 말 기준 현대백화점의 시니어 여성 브랜드 매출 비중은 1%에 불과하다.

코로나19는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명품과 가구·인테리어 등 리빙 상품에 소비자가 몰리자 백화점들이 중장년 여성 브랜드를 없애거나 수도권 외곽 점포로 빼는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최근엔 토종 브랜드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롯데백화점마저 명품과 수입 가구·인테리어 브랜드에 목을 매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소공동 본점이 지난 5월 말 시니어 브랜드 절반을 철수시킨 데 이어 2022년에는 잠실점도 본점을 따라갈 예정이다.
명품에 코 꿰인 백화점들
백화점들은 ‘제 코가 석자’라는 입장이다. 가격과 서비스에서 어중간한 방식으로는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공세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초고가 전략과 VIP를 겨냥한 마케팅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백화점업계 관계자는 “신세계 강남점이 연 매출 2조원을 넘어선 것은 해외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수입 브랜드들을 대거 들여온 덕분”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이 토종 브랜드를 철수하고 해외 리빙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들이 입점 수수료 ‘10년 제로’ 등 무리한 요구를 할 때 방패 역할을 한 곳이 롯데였다”며 “국내 경쟁사들이 명품에 ‘올인’하자 롯데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오갈데없는 중년 브랜드 품은 스타트업
일각에선 백화점과 패션업계 모두 근시안적인 대응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시니어 브랜드들이 사라질 뿐, 50대 이상 여성 고객층의 소비력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요즘 60대는 자신의 나이를 6~12년 정도 젊게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나이 먹었다는 사실을 굳이 상품(시니어 브랜드)을 통해 재확인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에이지리스(ageless, 나이 무관)’ 상품에 꽂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 브랜드들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퀸잇(queen it)’과 같이 스타트업이 중장년 여성을 겨냥해 구축한 패션 플랫폼이 뉴 시니어 공략에 성공한 것은 백화점 3사에 뼈아픈 대목이다. 지난해 9월 라포랩스라는 스타트업이 내놓은 패션 앱 퀸잇은 누적 다운로드 170만 건을 넘어섰다. 1월 대비 거래액이 10배 이상 늘어난 성장세에 소프트뱅크벤처스, 카카오벤처스 등 외부 기관들이 잇따라 투자에 나서면서 올해만 165억원을 유치했다. 마리끌레르 지센 막스까르따지오 등 중장년 여성 브랜드 300개가 입점해 있다. 미세즈도 퀸잇 입점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박동휘/김종우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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