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특혜 지적에 물납 허용 방침 철회…국회서 재논의
[2021세법] 부자감세 논란에 사라진 미술품 상속세 물납

상속세 미술품 물납(현금이 아닌 다른 자산으로 세금 납부)을 허용하려던 정부가 '부자 감세' 논란에 밀려 세법 개정 방침을 철회했다.

정부는 향후 국회에서 관련 내용을 재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부처 간 협의 사항을 며칠 만에 번복하며 혼선을 초래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미술품 물납 허용은 부자 감세" vs "세액 변동 없으니 감세 아냐"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일 사전 브리핑 때 세법 개정안에 담았던 '상속세 미술품 물납 허용'을 결국 뺐다.

당초 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오는 2023년부터 미술품에 대한 상속세 물납을 허용할 계획이었으나, 일주일도 채 안 돼 입장을 뒤집은 셈이 됐다.

미술품 물납 허용이 자칫 부유층에 대한 특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매년 상속세를 납부하는 인원은 2017년 6천986명, 2018년 8천2명, 2019년 8천357명 등으로 전체 인구 대비 0.02% 수준에 그친다.

상속 재산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상속세 납부 대상이 되지만, 최대 500억원까지 적용되는 기업 가업상속공제 등 각종 공제를 적용하면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건 일부 고액 자산가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개인 소장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대신 내게 되면 그만큼 현금 납부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물론 극히 일부이긴 하나 현금 세수가 감소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미술품 물납은 사실상의 부자 감세라고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은 상황으로, 앞서 당정 협의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정부는 미술품 물납이 허용돼도 상속세에 해당하는 가치만큼 미술품이 납부되므로 전체 세액에는 변동이 없으며, 미술품 물납을 감세라고 보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 물납 미술품 가치 평가·대상 선정 보완 지적도
물납 대상 미술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보급 문화재의 경우 정부가 돈을 주고 사들여서라도 국내에 보전할 필요가 있지만, 해외 작가의 작품까지 물납을 받아줄 근거가 있느냐는 논리다.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부동산이나 주식과 달리 전문가의 감정평가에 의존해야 하는 미술품의 특성상 평가액 산정 역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미술품을 상속할 때는 감정평가기관 2곳 이상의 평가를 통해 재산총액을 평가한 뒤 상속세율에 따라 세금을 매긴다.

당초 정부는 문체부 산하에 물납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감정평가 가액의 적절성을 거듭 평가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현재로선 이 또한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 "역사적 가치 높은 미술품 보전 취지는 공감"…국회서 재논의 방침
다만 문화계에서는 개인 소장 미술품이 상속 과정에서 급히 처분되며 문화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납제 도입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 이후 국보급 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잠잠하던 물납 도입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법률상 등록된 특정 등록미술품에 한해 상속세 물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는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특정 재산의 물납을 허용한다.

정부는 이러한 사회적 논의를 폭넓게 고려해 미술품 물납 도입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법 개정안 브리핑에서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과 문화재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 보전하기 위한 물납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여기에 대해선 좀 더 심도 있는 평가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개편안에선 미술품 물납을 일단 포함하지 않고, 대신 국회에 세법 개정안이 제출되면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며 "필요하면 정부 입법안보다 의원 입법안으로 법안을 발의해서 같이 논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