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인텔, 반도체 장비 입도선매 나서

네덜란드 ASML, 반도체 미세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EUV 독점 공급
삼성전자·TSMC 등 장비 확보전에 돌입하면서 ASML 매출도 사상 최대
삼성전자, 5~6년 전부터 EUV 확보위해 전방위로 뛰어
최근 미국도 가세하며 발주 경쟁 치열해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과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20년 10월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과 EUV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지금 네덜란드 ASML에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주문하면 4~5년은 있어야 받을 수 있을겁니다. 이미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입도선매하면서 자금력 부족한 기업은 사고싶어도 살 수 없는 지경입니다.”

최근 만난 업계 관계자 전한 반도체 시장은 기업 간 무한 경쟁으로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았다. 특히 반도체 기업 간 경쟁력은 EUV 장비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로 판가름나고 있다. 선폭 10㎚(나노미터,1㎚는10억분의 1m) 이하 최첨단 반도체칩을 생산하기 위해선 EUV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전자와 대만TSMC가 EUV 장비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혜택은 전세계 EUV 장비 공급을 독점하고 있는 네덜란드 ASML이 받고 있다.ASML은 최근 발표한 상반기 실적에서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EUV 장비 상반기에만 16대 팔려…대만 한국이 양분
EUV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활용된다. 기존 장비보다 훨씬 얇게 회로 선폭을 그릴 수 있어 EUV를 활용하면 같은 크기의 웨이퍼 안에서 건져낼 수 있는 칩수가 기존 장비보다 20~30% 가량 많아진다.

피터 베닝크 ASML CEO. 한경DB

피터 베닝크 ASML CEO. 한경DB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상반기 매출이 약 84억 유로(약 11조 4000억원)라고 밝혔다. 상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ASML의 매출은 EUV가 이끌었다. ASML 매출의 70%는 EUV 등 반도체 장비생산에서 나온다. 나머지 30%는 기존 판매 장비에 대한 정비·수리 등에 따른 것이다.

ASML 장비매출의 40% 가량은 EUV가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선 내년엔 EUV의 매출 비중이 절반 이상으로 올라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ASML의 EUV 최대 고객은 삼성전자와 TSMC다. 두 기업 모두 미국에 10㎚이하 미세공정이 가능한 파운드리 증설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ASML이 올해 들어 판매한 EUV는 총 16대인데 삼성전자와 TSMC가 각각 절반씩 가져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ASML의 2분기 지역별 매출을 살펴보면 한국과 대만이 39%와 36%로 거의 비슷하다. 중국이 17%를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이 중국에 대한 EUV 장비 수출을 막고 있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와 TSMC가 보유한 EUV 장비는 각각 17~19대와 40대 정도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구매능력을 갖춘 삼성전자와 TSMC가 EUV를 구입했다고 가정하면 삼성전자는 26~28대, TSMC는 46~48대 정도를 갖추게 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수주 잔량만 175억 유로
ASML은 사상 최대 실적 뿐 아니라 175억 유로(약 23조 7400억원)의 수주 잔량을 밝히며 업계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이 가운데 확인된 EUV 수주량은 2분기에 신규 수주받은 40억 유로 (약 5조 4200억 원)다.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가 실적 발표 자리에서 “EUV 장비 생산량을 올해 40여대, 2023년 60대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라고 밝힌만큼 EUV 수주 총량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일각에선 삼성전자가 향후에 필요한 EUV 장비를 얼마나 확보했는 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과거 ASML의 지역 별 매출 중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16%에 불과하다. 반면 대만은 51% 수준이었다.

매출 비중이 16%에서 40%가까이 늘어난 것은 삼성전자가 EUV 장비 확보를 위해 전방위로 뛰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5~6년 전부터 EUV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ASML 경영진과 접촉해 왔다. 2016년 11월엔 삼성전자를 방문한 베닝크 CEO 등 ASML 경영진을 만나 차세대 반도체 미세 공정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2019년 2월엔 프랑스 파리에서 다시 한번 베닝크 CEO를 만났다. 2020년 10월엔 네덜란드 ASML 본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올해 초 법정 구속되면 최고 의사결정권자 간 교류가 끊겼다.
미국까지 EUV 장비 확보에 가세
미국까지 EUV 장비 확보전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더 격화되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지난 3월 200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파운드리 두 곳을 건설할 계획을 밝혔다. 두 곳 모두 10㎜ 이하 미세공정 라인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도 파운드리에 EUV 장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ASML의 지역별 매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분기 3%에서 2분기 6%로 늘었다. 금액 기준으로는 9300만유로(약 1261억 원)에서 1억 7400만유로(약 2359억 원)로 급증했다.

EUV는 연간 생산량이 적고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 두업체만 ‘발주’ 경쟁에 뛰어들어도 다른 경쟁업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조금만 늦게 계약해도 생산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도체 장비업계 관계자는 “EUV는 제조에만 1년 이상 걸린다”며 “부품 형태로 공장 현지에 들어오기 때문에 조립 시간과 해당 기업에 작동법 전수 기간까지 감안하면 제조 후 생산에 투입되기 까지 약 2년 가량 걸린다”고 설명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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