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회사에서 일하는 50대 후반 프리츠는 10만달러(약 1억15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1985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의 퇴직연금 계좌에는 94만달러(약 10억8000만원)가 들어 있다. 2023년께 은퇴할 예정인 그는 “퇴직 기념으로 아내와 석 달간 스페인 여행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리츠와 비슷한 또래인 이모씨는 2017년 다니던 건설회사를 퇴직했다. 중동 현지 사무소장을 지냈고, 한때 연봉이 1억원을 넘었지만 건설경기가 나빠져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최근 정부가 50대 이상에게 제공하는 ‘노인 공공 알바’ 자리를 얻었다. 이씨는 “퇴직연금으로 월 40만원 정도를 받고 있다”며 “8년 후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고 했다.
美 14% vs 韓 2%…은퇴 후 삶 가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와 머서코리아가 한국과 미국의 50대 후반 직장인의 퇴직연금 운용을 비교분석해 내놓은 한 사례다. 이들의 ‘노후 삶의 질’을 가른 건 퇴직연금이다. 프리츠는 주식형 펀드 위주로 투자해 연평균 8% 정도의 수익률을 올렸다. 이씨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저축성 예금)에 돈을 묻어뒀다.

한국경제신문과 미래에셋증권이 30~50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퇴직연금에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90~100%라고 응답한 비율이 21.3%로 가장 높았다. 투자 비중을 모른다고 답한 비율도 15.4%였다. 퇴직연금 가입 상품을 한 번이라도 교체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8.4%가 없다고 답했다.

주식시장 급등에도 국내 퇴직연금의 지난해 수익률은 2.58%에 그쳤다. 전체 연금의 89.3%가 저축성 예금에 들어가 있는 게 문제였다. 미국의 대표적 퇴직연금인 401k의 지난해 수익률은 14.85%였으며 원리금 보장형 비중은 약 4%에 불과했다.

김혜령 하나금융 100년행복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저축성 예금에 퇴직연금을 넣어두면 안정적이라고 느껴지겠지만 미래 소득은 그만큼 불안정해진다”며 “은퇴 후에도 창업이나 재취업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