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한국신용평가 IS실장
최영 한국신용평가 IS실장

최영 한국신용평가 IS실장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트렌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에서도 공기업 위주로 발행되던 ESG 채권 발행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반기업과 금융회사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하는 수요예측에서도 흥행에 성공하는 등 발행 우위를 점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자본시장 일각에선 '투자의 선함'이라는 목표가 '투자수익률'이라는 좀 더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목표보다 계속해서 우선시될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예컨대 ‘벤치마크 수익률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ESG 투자는 지속될 수 있을까’ ‘비용증가를 유발하여 기업 부문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ESG가 향후에도 대세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기업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의 본진인 미국과 유럽이 과연 이 모순을 계속해서 가져갈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본고에서는 현재 미국과 유럽이 처한 주요 정치경제 환경을 분석하고, ESG 투자가 이를 극복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위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해보고자 한다.

글로벌 경제는 지난 수십년에 걸쳐 선진국에서 중국 등 저비용 국가로 공급망이 이동함에 따라 고성장·저물가의 골디락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최적의 상태)를 경험해 왔다. 그러나 같은 기간 신흥국들이 산업기반을 확대하고 소득증가를 향유한 데 반해 선진국은 제조업 생산라인이 공동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부작용을 겪었다. 아울러 디지털화로 패러다임 전환은 제조업 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에서도 구조조정 및 고용감소를 야기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에서는 자국 영토에 공장을 다시 유치하려는 온쇼어링(On-shoring) 운동과 관세 등 무역장벽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신흥국의 구조적인 비용 격차를 감안할 경우 온쇼어링을 위한 세금감면 및 정치적 압박 등의 고비용 정책은 지속적으로 동력이 유지되기 어렵다. 또한 관세 등 인위적인 무역장벽도 연관산업의 비용부담 증가와 경쟁력 저하 등의 부작용을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물론, 유럽의 경우에는 이러한 강력한 압박정치를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ESG 투자는 본연의 ‘착한 투자’라는 목적 이외에 지속적인 온쇼어링을 가능하게 하고, 글로벌 공급과잉을 해소하며,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소프트 무역장벽’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것이 직간접적인 비용증가에 대한 기업 부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선진국 정부와 연기금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ESG 투자를 강행하는 드러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ESG 투자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비용 격차를 줄여 자율적인 온쇼어링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수익성 및 주주 중심주의의 자본주의 하에서 글로벌 공급망 재배치는 비용절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임금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회적 책임 부담이 낮고 환경규제가 약한 개발도상국이 주된 공급망 대상이 됐다.

그러나 ESG 투자가 확대되면 환경규제가 낮거나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는 국가로 공급망을 이동하려는 기업은 자본조달 과정에서 난항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규제 준수를 위한 기반시설 및 시스템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기간과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공정의 자동화와 더불어 선진국의 제조업 기반이 재강화 되는 기반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EU(유럽연합)는 2021년 7월 14일 발표한 탈탄소정책 입법 패키지 ‘핏 포 55’(Fit for 55) 초안에 탄소국경조정제도(CABM, 탄소국경세)를 포함했다. 핏 포 55는 2030년까지 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 위한 정책으로, 2026년부터 EU로 수출되는 철강, 시멘트 등의 제품에는 탄소배출량에 따라 탄소국경세가 붙게 된다.

이 제도는 EU 내 기업이 환경규제를 피해 역외로 제조시설을 옮기는 ‘탄소 누출’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환경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EU 역외기업에 환경 관련 비용을 내도록 하는 사실상의 비관세장벽이 될 것이다.

둘째, ESG 투자는 ESG조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저성과 기업이나 ESG를 등한시하는 기업의 자연적인 퇴출을 유도해 저금리 하의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환경 규제, 사회적 책임, 공시의무 및 지배구조 개선은 모두 기업에는 비용부담 요인이다. 축적된 기술력과 시스템을 기반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상위기업을 제외하고는 업계에 새로 진입하거나 잔존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

2021년 초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연례서한을 통해 전 세계 투자 기업들에 대해 ‘넷 제로’(온실가스 순배출량이 0인 상태) 계획을 밝힐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 서한에서 래리 핑크 회장은 각 기업이 넷 제로를 장기적인 사업 전략에 어떻게 통합하고 있는지, 이사회는 어떻게 검토했는지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EU의 경우에도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에서 ESG를 기업 경영실적 보고서인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원칙을 지키지 않는 기업은 점차 유럽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역시 상장 대기업 중심으로 최근 ESG 채권 발행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재정적, 인력수급적, 제도적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이 이를 단기간에 따라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환경규제, 공시의무 등 ESG의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하는 기업들은 낮은 자금조달 비용이라는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며, 이는 ESG 저성과 기업과 비교해서 경쟁력 및 생존 가능성의 격차가 더욱 확대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셋째, ESG는 각국 정부가 가장 경계하는 디플레이션과 싸우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한 생산중단 및 불균형 회복 중 병목 현상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있다. 하지만 현재 각국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인내치 상승은 사실상 각국 경제가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라는 것을 강조해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공급망의 글로벌화와 소비 침체를 불러오는 양극화, ‘아마존화’로 대표되는 디지털화는 강한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동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및 코로나19 위기를 거쳐 각국 부채부담이 역사적으로 높아진 현 상황에서 공급과잉과 양극화, 디지털화로 디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부채부담을 가중시키고 장기 성장동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반면 ESG 투자는 일차적으로 각종 규제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도 글로벌 경쟁의 중심에 비용 절감과 최저가 이외에 비재무적 요소들을 추가하고 진입장벽을 높여 공급과잉을 해소하게 해준다. 이를 통해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완만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역사적인 수준의 각국 부채부담을 서서히 경감시킴으로써 중장기 성장동력 회복에 일조할 수 있다.

종합하자면 ESG 투자는 환경, 사회 개선과 투명성 강화라는 본연의 ‘착한 투자’ 목적 이외에 선진국의 제조 경쟁력을 제고하고 산업의 진입장벽을 높여 글로벌 공급과잉을 해소하며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소프트 무역장벽이라는 부가 효과를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선진국 정부 및 투자자들이 ESG 투자를 계속 강행할 수 있게 하는 주요 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ESG 투자가 수익성을 보장하지 못할 수도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상위 업체의 경쟁력 제고, 공급과잉 해소 등의 부가 효과가 ESG 투자 수익률을 개선하는 자기강화적 기제로 작동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선진국들의 ESG 정책 추진 동력에 힘입어 ESG 투자 트렌드는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ESG 기준 강화 및 투자 트렌드가 기업과 투자자 양측 모두에게 추가적인 규제부담과 비용증가 요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경쟁력 강화를 통해 진입장벽을 높이고 새로운 투자기회를 발굴하는 적극적 기회로 활용될 수 있다. 부디 한국 기업들과 투자자 모두가 ESG 투자의 긍정적 결과를 함께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칼럼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한국신용평가의 공식적인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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