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7월19일(08:3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직하기로 결정된 회사가 PEF에 팔린다는 데 회사를 옮기는 게 맞을까요?"

한 독자로부터 받은 이메일에 한동안 멍했습니다. 인수·합병(M&A)과 사모펀드(PEF) 출입을 담당하면서도 선뜻 답장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당장 PEF가 회사를 인수하면 ‘주먹구구’ 경영이 체계적으로 변하고, 글로벌 경험을 갖춘 CEO들이 속속들이 영입되고, 회사의 비효율적인 운영이 합리화되고…그간 취재현장에서 듣거나 기사로 써왔던 여러 이야기를 쓰다 지우다 반복했습니다.

당장 하루아침에 회사 주인이 PEF가 됐을 때 벌어질 일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대기업 배지를 떼는 순간 은행에서 전세 대출 이자율 앞자리가 바뀌었다는 문자를 받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TV에서 보니 라임같은 곳이 사모펀드라는 데 어쩌다…”는 장모님 전화엔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할까요. 이처럼 당장 현실이 눈앞에 다가온 직원들에 “회사가 7~8년 뒤 기업가치가 올라 좋은 회사에 다시 팔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이직하기로 결정된 회사가 PEF에 팔린답니다" [차준호의 썬데이IB]
실제로 PEF들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도 임직원들의 동요를 최소화 하는 일입니다. 거추장스럽게 PMI(Post-Merger Integration)라 하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직원들 마음을 돌려서 일터로 복귀시키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해외 유학파에 난다긴다하는 경력을 자랑하는 PEF운용사 대표들이 저녁자리마다 노조 앞에서 눈두덩으로 맥주병을 따는 ‘묘기’를 선보이는 것도 PMI가 실패하면 모든게 꼬여버리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도 PEF가 정착한 지 10년여가 흐르면서 인수 기업이 환골탈태한 사례들도 흔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모든 기록이 그렇듯 승자들의 '끼워맞추기'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규 투자도 미루고 족족 배당에만 신경쓰다 우연히 좋은 인수자를 만나 대박난 사례도 부지기수입니다. 애초 인수 시점부터 '사고만 치지 마라'며 사실상 방치하다 산업 사이클이 돌아왔을 때 회사를 팔려는 목적의 PEF도 있습니다. 주식에만 테마주가 있는 게 아니라 PEF도 테마주 투자자들이 적지않은 셈이죠.

'고급 두뇌'인 PEF 인력들이 경영을 맡으면 꼭 회사가 좋아질까요. 베인캐피탈·골드만삭스는 익히 알려진대로 화장품회사 카버코리아를 유니레버로 매각해 '대박'을 거뒀습니다. 1년여만에 투입 현금 대비 6배 넘는 차익을 올렸습니다. 앤 해서웨이까지 모델로 기용하며 브랜드 AHC의 고급화에 성공한 점이 핵심이었습니다. 반면 중견 용기회사를 인수한 글로벌PEF A사는 북유럽 감성을 입히겠다며 아이폰 디자이너까지 수소문해 수십억원을 주고 컨설팅을 맡겼지만,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선 '헬로키티'를 덧입혀 대박을 낸 이전 오너보다도 못하다는 조롱들이 나왔습니다. 경영이 객관식 점수를 낼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보니 누가 더 실력이 있는가를 명확하게 가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오랜기간 PEF 자문을 맡아온 한 취재원은 인수 회사를 좋게 만드는 PEF와 망치는 PEF의 감별 기준으로 '이해관계 일치·목표의 단순화' 능력을 꼽았습니다. 국내 PEF운용사가 얼마나 빠르게 커지는 지도 결국 이를 촘촘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역량에 비례한다는 게 해당 인사의 신념이었습니다.
"이직하기로 결정된 회사가 PEF에 팔린답니다" [차준호의 썬데이IB]
예를 들어 한 국내 대형 PEF는 인수한 포트폴리오 회사 직원들에 A업체를 기한 내 고객사로 확보해오면 향후 성과와 관계없이 당장 정해진 금액을 인센티브로 지급하겠다 목표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해당 고객을 잡기 위한 연구개발(R&D), 마케팅 비용 등도 한도없이 지급하겠다 선언했죠. 어떻게든 당장 직원들이 회의실을 떠나 움직이도록 여러 제안을 만드는 게 해당 운용사의 노하우라고 합니다. 반면 게임회사에 투자한 한 PEF는 개발자들에 주단위로 신작 게임 진전 상황을 보고하라 했다 원성만 샀습니다. 실력있는 인재들의 이탈도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입니다. PEF 운영진과 첫 상견례 자리에서 여전히 회사가 나아갈 목표가 '매출·점유율'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제시된다면 언제든 미련없이 회사를 떠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성과에 따라 임직원들이 '돈쭐'날 수 있는 점도 PEF가 새 주인이 됐을 때 매력 중 하나입니다. 카버코리아 브랜드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1등 공신으로 평가된 모 임원은 회사 매각 이후 100억원 대 현금을 보너스로 받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연봉의 3배가까운 금액을 한꺼번에 받은 셈이죠. (물론 당시 PEF 직원들도 떼돈을 벌었습니다. 워낙 매각 차익이 컸던 탓에 당시 PEF 내에서 회사 인수를 지휘했던 상무급 인사 한 명은 미련없이 30대에 '은퇴'를 선언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직하기로 결정된 회사가 PEF에 팔린답니다" [차준호의 썬데이IB]
반면 앞서 말한 이해관계 일치가 평가가 어긋나면서 회사가 무너진 사례도 부지기수입니다. 과거 프랜차이즈 K사를 인수했던 글로벌PEF C사가 대표적입니다. 사내에서도 기존 회사 대표와 PEF에 보고하는 내용이 다를 정도로 파벌이 갈렸다고 합니다. 결국 회사 대표와 PEF 대표간 소송전까지 불사할 정도로 양 측이 난타전을 벌인 끝에 글로벌 PEF의 한국 대표가 사실상 경질되는 것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글로벌 사모펀드 K사와 A사 두 곳이 공동으로 인수했던 한 플랫폼업체에선 'K파'와 'A파'로 나뉘어서 CEO 및 임원이 수시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어느 라인에 줄을 서야 할까가 직원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하네요.

남양유업에 이어 한샘까지 PEF운용사들의 깜짝 인수가 연이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임직원들의 고민은 이어질 것 같습니다. 당장 회사 매각 때마다 재직자들의 커뮤니티인 블라인드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프라이빗'을 지향한다는 PEF라지만, 평판을 다시금 점검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혹시 우리 운용사의 매력을 '어필'하고싶은 곳이 있다면 저희 뉴스레터(CFO Insight)의 문도 언제든 활짝 열려 있습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