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산업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12일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경영책임자의 의무 등 법 규정 곳곳에 여전히 포괄적이고 모호한 조항이 많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힘들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추가 보완입법 없이 이 법이 시행될 경우 법 적용과 처벌 과정에서 소송 대란이 벌어질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중대재해법 여전히 모호"…소송대란 불보듯

열사병 환자만 나와도 사업주 처벌

중대재해법은 위반 시 형사처벌이 이뤄지는 만큼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른 법보다 명확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영계 우려가 가장 큰 조항은 시행령안 2조에서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직업성 질병’의 범위다. 동물로부터 감염되는 브루셀라증, 여름 감기로 착각하기 쉬운 레지오넬라증, 사업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열사병 등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질병 범위가 너무 넓고, 명확한 기준도 없어 사업주가 형사처벌받을 가능성이 지나치게 높다는 게 문제다. 경영계에선 질병의 중증도 기준을 정해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만 직업성 질병으로 보는 등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업주 등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구체화한 4조도 불명확한 조항으로 꼽힌다. 시행령은 의무를 규정하면서 ‘충실하게 수행’ ‘적정한 예산 편성’ 등 추상적인 형용사를 사용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법 준수 의지가 있는 사업주도 지키지 못할 지경”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행령안 5조도 마찬가지다. 사업주 등에게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관리 조치’ 의무를 부여하면서 ‘관계 법령’이 무엇인지 최소한의 예시도 제시하지 않았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한 외국계 기업이 ‘안전보건 관계법령이 도대체 뭐냐’고 문의해와 시행령안에 적혀 있는 대로 ‘안전보건과 관계된 법령’이라고 설명했더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고용노동부가 법 시행 전에 구체적인 관계 법령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법령의 범위에 따라 사업주 의무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더 큰 논란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소송 확대로 사회적 비용 급증할 것”

중대재해법의 처벌 규정이 산업 현장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시행령안 8조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교육 수강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수하지 못할 경우 과태료를 물리도록 했다. 경영계는 “중대 재해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주에게 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최소한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형사소송 전문 변호사도 “유죄 확정도 아닌데 수강 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과도하게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 14조에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을 공표하는 규정도 산업안전법상 공표 대상과 중복돼 ‘이중 공표’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법 규정이 모호한 데다 처벌마저 과도해 기업들의 소송 제기가 잇따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검찰은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모호하면 무조건 기소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법 시행 이후부터는 기업들이 법원으로 향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 불필요한 소송으로 가게 되면 갈등과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판결 확정까지 사회경제적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고용노동 위기대응 TF 대책회의’를 열고 “중대산업재해 컨트롤타워인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했다”며 “8월부터는 사전 예고 없는 불시점검을 통해 점검 효과를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