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하자"는 고승범 누구?…재무관료 출신 강성매파 [김익환의 BOK워치]
2003년 7월 여름. 청와대에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로 복귀한 고승범 비은행감독과장은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당시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카드사 부실이 깊어지는 '카드 사태'를 관할하는 자리로 인사가 났기 때문이다. 카드 사태를 추스린 뒤 2010년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으로 재직할 때는 저축은행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사태 처리를 주도하면서 머리를 싸맸다.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위원은 사석에서 재무관료 시절 이야기를 종종 꺼낸다. 최근 가계부채가 증가 속도가 빨라지는 것에 대해 언급하는 와중에도 18년전 아찔했던 카드 사태 이야기를 풀어냈다. 연 0.5%로 사상 최저인 기준금리가 빚어낼 '부채 위기'를 우회적으로 경고한 것으로 해석했다.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통하던 그는 예상보다 빨리 행동했다. 지난 15일 열린 금통위에서 위원 7명 가운데 홀로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제시했다. 코로나19 사태의 '4차 대유행'이 본격화하는 만큼 이번에는 소수의견이 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소수의견이 예상보다 빨리 나오면서 금융시장도 출렁거렸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전날 0.107%포인트나 상승한 연 1.497%에 마감하며 2019년 11월 18일(연 1.518%)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고승범 위원이 금리인상 의견을 제시한 배경을 지난 5월 여신금융협회에서 '최근 경제 상황과 향후 정책 과제'라는 강연회에서 일부 감지할 수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민간부채·부동산금융 증가속도가 빨라지는 데 대해 상당한 우려를 내놨다. 저축은행과 카드사를 비롯한 비은행권의 가계 신용대출이 빨라지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가 컸다.

한은의 ‘2021년 6월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올 1분기 말 가계부채는 4226조원으로 작년 1분기 말보다 362조원이나 늘었다. 지난해 말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는 2279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말보다 10.3%(212조2000억원) 증가한 금액이다.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0.5%로 내려가면서 폭증한 가계부채는 성장률을 갉아 먹고 금융안정을 훼손할 우려가 커졌다. 고 위원도 이 같은 우려를 바탕으로 기준금리 인상 의견을 제시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의 '강성 매파' 행보는 정통 재무관료로서 경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행시 28회로 1986년 재무부 국제금융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청와대 경제복지노동특보실 파견에서 복귀한 이후 2003~2016년에 금융위원회에서 근무하며 가계대출 부실과 금융권 감독업무를 주로 관할했다. 카드 사태와 저축은행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를 수술대에 올렸다. 가계부채가 금융리스크로 번지는 위기를 관리하던 관료 경험이 매파적 시각을 형성하는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 위원은 2016년 4월 금융위원장 추천으로 금통위원으로 선임됐다. 처음 금통위에 합류할 당시만 해도 성장에 무게를 두는 관료 출신인 만큼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로 분류됐다. 하지만 2018년 10월에 당시 이일형 위원과 함께 금리인상 소수의견을 처음 제시하며 매파 입지를 굳혔다. 그가 소수의견을 제시한 뒤 한달 뒤인 2018년 11월 한은은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 올렸다. 2020년 4월에는 한은 총재 추천으로 금통위원 가운데 사상 처음 연임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5% 수준에서 동결 의견을 이어갔다.

하지만 최근 실물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자 2년 9개월 만인 지난 15일 재차 금리인상 소수의견을 냈다. 금융시장에서는 고 위원의 의견에 동조하는 위원들이 늘면서 이르면 오는 8월 한은이 금리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 위원의 부친은 재무부 재정차관보 등을 거친 고병우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다. 고 위원 여동생의 남편은 한국투자증권의 지주사인 한국금융지주 김남구 회장이다. 고 위원은 지난 2019년에 윤종원 기업은행장과 함께 차기 기업은행장 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