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기업들이 부동산을 팔거나 유동화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증시 활황을 기회로 조(兆) 단위의 유상증자를 선택하는 기업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15일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 집계 결과, 올 상반기 국내 상장사들이 공시한 부동산 매각 규모는 총 4조7235억원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7% 늘어난 수치다.

부동산 팔고, 兆단위 유상증자…신사업 '실탄' 충전 나선 기업들
SK그룹 롯데그룹 신세계그룹 등이 대표적으로 자산 유동화에 나섰다. 올 들어 이베이코리아, W컨셉 등을 인수한 신세계는 신사업의 ‘실탄’으로 오프라인 자산 활용 전략을 세웠다. 이마트를 세일즈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유동화했다. 2019년부터 작년까지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은 1조3000억원이다. 올해 6800억원에 부지를 매각한 서울 가양점도 개발사업 후 점포를 임차할 계획이다. 여기에 1조원 규모의 이마트 서울 성수동 본사와 이마트 건물도 자산 유동화를 검토하고 있다.

SK그룹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위해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만들었다. 사옥인 SK서린빌딩과 SK에너지의 115개 주유소 등 2조원 규모의 부동산을 SK리츠로 유동화했다. 확보한 자금으로 수소·전기차 충전소 등 친환경 에너지 플랫폼 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 강화에 나선 롯데쇼핑은 롯데월드타워와 월드몰 지분을 롯데물산에 넘겨 8300억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룹 자산 유동화는 계열사들이 책임 임차하면서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내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투자”라며 “그룹은 보유 부동산을 묶어 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투자 재원도 마련할 수 있어 양쪽이 다 이득”이라고 설명했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사옥을 매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롯데손해보험은 지급여력비율(RBC)을 높이기 위해 서울 남창동 본사 빌딩을 2240억원에 팔았다. 하나투어는 종로 본사 빌딩(940억원)과 티마크호텔 명동(950억원)을 매각했고, 삼익악기는 남대문 사옥(1200억원)을 정리했다. 신도리코와 SNT중공업도 보유 부동산 매각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유상증자와 기업공개(IPO)를 통해 재원을 확보한 기업도 적지 않다. 상반기 주식 발행 금액은 12조6891억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금액(10조9164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유상증자 9조4789억원, 기업공개 3조2102억원 등이다. 올해 사상 최대 기록을 다시 쓸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 유상증자 금액이 가장 컸던 기업은 대한항공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3조3159억원을 발행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유상증자를 실시한 한화솔루션(1조3460억원), 생산공장 증설에 나선 포스코케미칼(1조2735억원), 신사업 투자에 나선 한화시스템(1조1606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9945억원) 등도 대규모 유상증자를 했다.

윤아영/김진성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