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장관 "정기공채 늘려달라"… 현장실무자 72% "부적절한 발언"
지난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 등 정치권 뉴스가 쏟아진 가운데 결은 다르지만,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킨 행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달 28일 아침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30대 그룹 CHO(인사노무 담당 임원)들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주요 그룹 CHO간담회는 고용부 장관의 연례행사이긴 하지만 이날 행사가 주요 언론의 관심을 끈 것은 장관의 '용기있는' 혹은 '선을 넘은'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안 장관이 이날 행사에서 가장 강조한 내용은 청년 취업난 해소를 위한 기업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주요 발언 내용은 이랬습니다. "수시 채용 중심의 채용 트렌드 변화에 따라 청년들은 채용 규모가 줄어들고 직무 경력이 없으면 취업이 어렵다는 애로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청년들의 불안과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도록 공채 채용 제도에 대한 기업의 보다 적극적인 인식과 활용을 당부합니다. 청년고용 문제 해결에 있어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30대 기업이 앞장서서 청년 인재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수시채용을 줄이고 공채를 늘려 청년일자리를 늘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행사 이후 안 장관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국경제신문을 비롯한 상당수 언론에서는 '친노동 정책만 잔뜩 펼쳐서 경영 환경을 어렵게 해놓고 이제와서 채용을 읍소한다' '민간기업의 채용 시스템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부는 "기업에 특정 채용방식을 강요한 것이 아니라 청년 채용을 위한 기업과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라며 "수시·경력직 채용의 경우에도 직무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 불합리한 차별 해소 등에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고용부의 해명처럼 언론이 고용노동정책 주무장관의 발언을 왜곡해 보도한 것일까요. 아니면 고용부 설명과 달리 장관이 민간기업 CHO들을 불러모아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일까요. 이에 실제 기업 현장에서 일하는 인사노무 담당자들의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한경 CHO insight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회원 54명이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첫 질문은 "수시채용을 줄이고 공채를 늘리라"는 고용부 장관의 주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였습니다. 반응은 매우 차가웠습니다. '기업 인사시스템에 관여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응답이 무려 71.7%에 달했습니다. 반면 '코로나19 상황과 청년 취업난을 고려한 적절한 발언'이라는 응답은 15.1%에 불과했습니다. 고용부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간담회 분위기는 좋았는데 언론이 일부만 부각해 비판했다"며 불만을 내비쳤지만 기업 현장의 담당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어 보이는 결과입니다.

안 장관의 채용 확대 주문과 관련해 각 기업들의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 채용계획도 물어봤습니다. 다행히 '기존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응답이 42%로 가장 많았습니다. '채용을 늘릴 계획'이라는 응답도 14%였습니다. 하지만 '채용을 축소할 것'이라는 응답과 '당분간 채용이 어렵다'는 비율이 각각 22%로 도합 44%에 달했습니다. 최근 고용지표는 코로나19 충격에서 다소 회복되는 모양새지만 민간 고용시장 회복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고용장관은 수시채용을 줄이고 정기공채 확대를 주문했습니다만 기업들은 채용방식과 관련해 '정기공채를 유지(환원)하거나 확대하겠다'는 응답은 8%에 그쳤습니다. 반면 '수시채용으로 전면 전환할 것'이라는 응답은 36%, '공채와 수시채용을 병행하겠다'는 응답이 56%였습니다. 응답자들은 수시채용을 확대하는 이유로 '범용 인재보다 맞춤형 인재 필요'(47.1%), '경영환경 악화'(25.5%), '동시에 대규모 인력 채용 불필요'(25.5%), '호봉제에 따른 임금상승 부담'(2%) 순으로 답했습니다.

정부 정책 중 기업이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정책이 무엇인지도 물어봤습니다. 예상하시는 대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43.1%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으로 '해고자 등의 노조활동을 보장한 노조법 개정'(33.3%), '주52시간제의 전격 시행'(19.6%)이 뒤를 이었습니다. 한창 시행령 마련 작업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이 채용을 가로막는다는 응답은 4%로 많지 않았습니다.

설문에 응해주신 뉴스레터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