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30일 보이스피싱 피해자 설문조사 결과 발표

"검사인데 수사 위해 신분증 보내세요" 보이스피싱의 진화
"100만원 이상 송금 땐 30분 내 ATM 인출 안돼
인지 즉시 신고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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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4월 A씨는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대방은 “서울xx지검 최xx검사인데 중고나라에서 대포통장 사용으로 인한 신고가 13건 들어와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며 "유선상 수사를 하려면 개인정보(신분증)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과 귀하의 개인통장 잔고가 안전 자산인지 불법 자산인지 조사해야 한다”며 A씨의 은행 계좌번호 및 비밀번호, 신분증 등을 요구했다. 깜짝 놀란 A씨가 관련 정보를 넘겨줬고 계좌에 있던 1000만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한 캐피탈회사에서는 자신의 명의로 4000만원이 대출된 사실을 알게 됐다.

#2. 지난 6월 B씨는 자신을 서울xx지검 검사라고 밝힌 낮선 사람으로부터 "귀하의 계좌가 대규모 자금세탁 범죄에 연루돼 대포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불법자금이 지하경제로 은닉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좌에 있는 돈을 인출해 자금세탁 작업이 폐기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 B씨는 은행 계좌에서 3100만원을 인출해 전달했고 그 이후로 연락이 뚝 끊겼다.

#3. 지난 4월 C씨는 한 금융회사 명의로 대출상담 문자 한통을 받았다. 급전이 필요했던 그가 전화를 해보니 상대방은 "최대 3000만원 한도로 저리대출을 해주겠다"며 꼬드겼다.

그러면서 "다만 귀하의 신용등급이 낮은 상태이니, 일정 금액을 금융회사 계좌에 여러차례 이체해 거래 실적을 늘리는 방법으로 신용등급을 올리고 나서 대출해주겠다"고 했다. 이 말에 속은 C씨는 450만원을 송금했고 사기범은 종적을 감췄다.

#4. 지난 3월 D씨는 한 은행의 정부지원자금 대출 안내 문자를 받았다. 상담을 위해 전화를 해보니 상대방은 "해당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기존 대출 3000만원부터 상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믿은 D씨는 본인 자금은 물론 지인 돈까지 빌려 3000만원을 만들어 전달했다. 그 후에도 은행 대출 절차를 밟기 위해 모 보증보험에 납부할 공탁금 1200만원, 인지세 1620만원 등을 추가로 요구해 이번에도 의심 없이 송금을 완료했다. 물론 그 뒤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5. 이달 13일 E씨는 휴대폰 메신저를 통해 '딸'의 메시지를 받았다. '딸'은 “전화가 고장나 통화가 불가능하다"며 "엄마 핸드폰을 사용해야겠으니 원격조정 앱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앱 설치 후 "엄마의 신분증과 카드번호 등을 알려달라"고 했다.

E씨는 메신저 사진 및 대화명이 평소와 똑같아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딸'의 요구대로 앱을 설치한 뒤 개인정보를 모두 보냈다. 얼마 뒤 E씨 계좌에 있던 441만원이 타행으로 이체됐다는 알림이 떴다.

금융감독원은 30일 이 같은 내용의 '보이스피싱 피해자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설문조사는 보이스피싱 피해구제 신청 등을 위해 은행 등 금융회사 영업점에 방문한 피해자 6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다.

보이스피싱 접근 매체로는 문자가 45.9%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전화(32.5%), 메신저(19.7%) 등의 순이었다.

수법으로는 가족·지인을 사칭하는 사기가 36.1%를 차지했으며 금융회사를 사칭한 저리대출 빙자 사기(29.8%), 검찰 등을 사칭한 범죄연루 빙자사기(20.5%) 등도 비슷한 비중을 보였다.

연령별로 취약한 수법도 달랐다. 20대 이하는 범죄연루 빙자유형이 50.0%로 가장 높은 비중을 나타냈으며 30·40대는 저리대출 빙자유형(38.0%)에, 50·60대 이상은 가족·지인사칭(48.4%)에 각각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기 피해를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은 '골든타임(30분)'을 넘기는 비중이 4명 중 3명 꼴에 달했다. 금융당국은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재 100만원 이상을 입금했을 때 30분간 자동화기기(ATM) 등을 통한 현금 인출을 제한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64.3%)은 4시간 이내 피해 사실을 인지했다고 밝혔으며 24시간이 경과해서야 깨달았다는 비중도 19.0%나 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찰·경찰·금감원 등은 어떠한 경우에도 금전의 이체를 요구하거나 금융거래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면서 "낯선 사람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을 경우 반드시 사실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또 "금융회사는 저리 대출 광고 문자를 보내지 않는데다 단기간 입출금 거래를 하더라도 신용등급이 올라가지 않는다"면서 "또 출처가 불분명한 악성 앱이나 원격조정 앱 등을 설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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