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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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7일은 창업 11년차 쿠팡의 기업사(史)에 깊은 상흔을 남긴 날이다. 덕평 쿠팡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300명에 가까운 근로자 중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끝났지만, 쿠팡은 유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쿠팡 화재’는 ‘쿠팡 현상’이란 말로 치환해도 무방할 만큼 다양한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그중에서도 비난의 화살이 화마(火魔)의 피해자인 쿠팡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물이건 불이건 난리를 겪고 나면 적어도 피해자를 위한 동정 여론이 생기기 마련인데, 쿠팡만은 예외였다. 심지어 화재 진화는 물론 당시 실종 소방관의 생사가 확인되기도 전에 온라인에선 ‘#쿠팡 불매’라는 회원탈퇴 인증샷이 삽시간에 퍼졌을 정도다.

한국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올 3월 화려하게 뉴욕증권거래소에 직상장하며 한때 ‘100조 쿠팡’이라 불렸던 유니콘 기업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된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쿠팡 관계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안전관리를 포함해 회사 시스템 전반에 대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말을 아꼈다. 쿠팡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쿠팡의 혁신이 다른 곳에는 파괴적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는 점을 쿠팡 경영진이 인지하고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쿠팡의 혁신으로 인한 부작용을 인내해온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정서가 이번 ‘쿠팡현상’의 기저에 깔려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화재가 쿠팡에 대한 비난으로 비화된 데엔 창업자인 김범석 전 의장의 갑작스러운 이사회 의장 사퇴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게 중론이다. 김범석 쿠팡Inc(미국 지주회사) 대표가 한국 본사의 대표직(작년 말)에 이어 이사회 의장직(5월 말)에서 사퇴한 건 쿠팡이라는 한국형 e커머스 플랫폼을 해외로 퍼트리기 위한 수순에서다. 시행되지도 않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위해 강한승·박대준 공동대표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것이라는 논리는 당사자들로선 억울할 법한 주장이다.

상장·화마…몇 개월 새 천당과 지옥 오간 쿠팡, 진짜 문제는?
그럼에도 대중은 진실보다는 ‘벼락출세한 검은머리 외국인’에 대한 질투에 더 마음이 기우는 것 같다. 김 대표가 직접 설명한 적이 없으니 대중의 자기확증적 편향을 비판하기도 어렵다. 기업도 소비자와 끊임없이 소통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대다. 쿠팡이 남양유업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