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확대경영회의에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을 상대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SK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2일 확대경영회의에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을 상대로 자신의 경영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SK 제공
SK그룹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차원에서 정부가 제시한 목표 시점인 2050년보다 훨씬 앞당겨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했다. “앞으로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격하게 올라갈 것을 감안하면 탄소중립은 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의 문제”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SK 계열사들, 탄소중립 결의

23일 SK에 따르면 최 회장은 전날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린 확대경영회의에서 그룹 차원의 탄소중립 추진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회의에는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최 회장은 “남들보다 더 빨리 움직이면 우리의 전략적 선택 폭이 커져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세계 각국 정부가 2050년을 탄소중립 달성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으나, SK는 이보다 더 빨리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K 계열사들은 최 회장의 주문에 따라 2050년 이전까지 이산화탄소 등 7대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마련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는 내용의 공동 결의문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목표치도 정했다. 2020년 SK그룹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10년 뒤인 2030년까지 약 35%, 2040년까지는 85%를 감축하기로 했다. 이는 SK가 탄소 감축 활동을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온실가스 배출치와 견줘 2030년은 65%, 2040년은 93%나 줄이는 공격적인 목표다. 계열사 중에선 SK머티리얼즈가 우선 203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계열사들도 조만간 조기 달성 목표를 수립해 내놓는다. 또 최소 10년 단위로 중간 목표치를 설정하고, 매년 성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최 회장은 ‘딥 체인지’(근본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도 당부했다. 그는 “딥 체인지를 위한 방법론으로 그동안 비즈니스 모델 혁신, 사회적 가치, ESG 경영 등을 제시했는데 방법론에 매몰돼 큰 그림을 못 보는 일도 있는 것 같다”며 “모든 방법론을 한 그릇에 담아 이해 관계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실천한다면 결국 신뢰를 얻고, 더 큰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폐페트병 화학적 분해 기술 확보

계열사 중엔 탄소중립을 사업 기회로 삼아 실행에 나선 곳도 나왔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종합화학은 페트병, 섬유 등을 100%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사 루프인더스트리 지분 10%를 5650만달러(약 63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기존 플라스틱 재활용은 주로 페트병의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녹여 다소 품질이 좋지 않은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뽑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루프인더스트리가 보유한 기술은 진일보한 것이다. 폐페트병이나 섬유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와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까지 만드는 기술이다. SK 관계자는 “기존에 재활용이 어려웠던 오염된 페트병, 섬유 등도 원료로 쓸 수 있게 돼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SK종합화학과 루프인더스트리는 내년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2023년 국내에 연 8만4000t 규모의 폐페트병 처리공장을 착공하기로 했다. 또 2030년까지 아시아 지역에 4곳의 재생 페트 생산 설비를 구축하기로 했다. 투자가 완료되면 재생 페트 처리 능력은 연 40만t에 이를 전망이다. 국내에서 한 해 발생하는 페트병 쓰레기 약 30만t을 웃도는 규모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