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일진그룹

脫탄소화 앞당기는 주역
전기차 이어 수소차 부품까지
미래 성장동력은 바이오산업
전기차 끌고 수소차 밀고…일진그룹, 친환경 소재·부품산업 선도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폴리이미드 등 3개 핵심 소재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빌미 삼아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의 급소를 겨냥한 조치였다. 국내 산업계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출렁였다. 전문가들이 줄곧 소재·부품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외쳐왔지만, 실상 국산화 작업은 더뎠고 준비도 부족했던 현실을 다시금 일깨운 계기였다.

일진그룹은 창업자 허진규 회장이 이런 상황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53년간 소재·부품 산업 한우물을 파온 기업이다. 허 회장은 “옛날 중국에서 가마우지라는 바닷새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은 뒤 빼앗은 것처럼, 수출을 많이 해도 원천기술이 없어 사냥한 물고기(부가가치)를 일본에 내주는 열악한 산업 구조를 타개해야 한다”며 직원들의 연구개발(R&D)을 독려했다.

일진그룹은 집 앞마당 흑연 도가니 하나로 시작해 지금은 국내외 40여 개 계열사 및 해외법인을 보유한 매출 2조원대의 중견그룹으로 우뚝 섰다. 1968년 창립 이래 순수 자체 기술로 개발한 제품이 전체의 90%를 넘는다. 20세기 개발한 인쇄회로기판(PCB)용 일렉포일은 한국 전자산업 발전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다. 일렉포일은 대일 무역적자 해소에 힘을 보태며 과학기술부가 1999년 ‘20세기 대한민국 100대 기술’로 선정하기도 했다. 공업용 합성다이아몬드는 자동차 조선 건설 토목 정밀기계 등 주요 산업 수출 증대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21세기에는 환경 친화적인 소재·부품이 그룹 성장을 이끌고 있다.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기차 등 그룹의 양대 신성장동력인 친환경 자동차용 기술 개발을 선도하며 한국의 탈(脫)탄소화를 앞당기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소재 국내 1위
전기차 배터리 소재를 생산하는 일진머티리얼즈가 그룹 성장을 이끄는 쌍두마차의 한 축이다. 허 회장이 ‘전자산업의 밭’에 비유한 일렉포일 국내 원조 기업으로 일본 기업들이 독점해온 소재를 1980년대 한국에서 최초로 양산하기 시작했다. 국내 전자산업이 성장하면서 일렉포일 수요는 늘어났지만 전량 일본에 의존하던 데 착안해 국산화에 시동을 건 지 10년 만의 성과다. 회사 관계자는 “당시 일본은 불량이 잦던 B급 일렉포일도 ‘마음에 안 들면 사지 말라’는 식의 고자세를 취해 국내 PCB 회사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며 “일렉포일이 국산화되지 않았더라면 한국이 일본 전자산업을 추월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001년 국내에서 처음 2차전지용 일렉포일 양산도 시작했다. 30년 넘는 R&D와 앞선 투자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새로운 빛을 발하기 시작한 때다. 전기차용 일렉포일은 두께가 10㎛(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얇은 구리 박(箔)으로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배터리 성능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019년 1월 말레이시아 쿠칭에 일렉포일 전용 공장을 세웠다. 말레이시아 법인의 생산능력을 8만t으로 늘려 국내(2만t)와 합쳐 2022년 말까지 전기차용 일렉포일 생산능력을 10만t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일진머티리얼즈 관계자는 “성장하고 있는 미국 시장을 겨냥해 미국 법인 설립도 준비 중”이라며 “세계적인 수요 변화에 따라 생산능력을 최대 20만t까지 빠르게 늘릴 수 있는 채비를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수익성에 보탬이 되는 장기 공급 계약도 연이어 체결하고 있다. 지난 4월 스웨덴 배터리 기업 노스볼트와 10년간 4000억원 상당의 1만7147t 규모 2차전지용 일렉포일 계약을 맺은 게 대표적인 예다.
국내 유일 수소차용 연료탱크 양산
지난 4월 일진복합소재에서 문패를 고쳐 단 일진하이솔루스는 쌍두마차의 또 다른 축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소차 핵심 부품인 타입4 수소연료탱크를 양산하는 기업이다. 세계적으로 타입4 탱크 양산에 성공한 기업은 이 회사와 일본 도요타 두 회사뿐이라는 게 일진그룹 측 설명이다.

2011년 인수한 한국복합재료연구소가 일진하이솔루스의 전신이다. 당시 주력 사업은 압축천연가스(CNG) 버스용 타입4 연료탱크였다. 이 기술력을 한층 끌어올린 이래 2014년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수소차 투싼ix에 수소연료탱크를 공급했다. 2017년부터 차세대 수소전기차 넥쏘에도 수소연료탱크를 독점 공급하고 있다.

기업공개(IPO)도 준비 중이다.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 대부분은 대규모 공장 증설에 활용할 계획이다. 4월 전라북도, 완주군과 연구센터 및 제조공장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MOU)을 맺는 등 제조 전진기지는 확보했다. 일진하이솔루스 관계자는 “올 12월 전북 완주 테크노밸리에 수소 저장 솔루션 연구센터를 세울 것”이라며 “미래 성장동력인 상용차, 드론, 철도용 저장 솔루션, 수소 물류용 튜브스키드, 액화수소 저장 솔루션 등 수소 모빌리티 관련 최첨단 제품의 R&D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소연료탱크는 승용차 외에도 상용차, 드론, 선박, 철도 등 다양한 운송수단에 적용될 수 있어 성장성이 높다는 평가다.
바이오산업도 미래 먹거리
일진그룹은 미래 성장 산업으로 바이오산업도 육성하고 있다. 그룹이 투자한 캐나다 제약회사 오리니아의 난치병 루푸스신염 치료제 ‘루프키니스(LUPKYNIS)’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등 가시적인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오리니아는 미국 나스닥과 캐나다 토론토 증권거래소 TSX에 상장된 캐나다 제약회사로 일진그룹 계열사 일진에스앤티가 1대 주주다.

앞서 1990년 투자한 미국 바이오 벤처기업 이텍스도 뼈 대체용 의약성 신물질로 1996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일진그룹 관계자는 “신약 개발을 통한 바이오산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가도 공격적으로 영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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