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최근 250여 개 협력사를 대상으로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LG전자 1차 협력사인 신성오토텍 직원들이 설비 관제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LG전자는 최근 250여 개 협력사를 대상으로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LG전자 1차 협력사인 신성오토텍 직원들이 설비 관제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현대중공업은 협력사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평가 지표를 개발하고 있다. 협력사들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안에 협력사별로 필요한 ESG 지원이 무엇인지를 조사해 상생 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라며 “금융 지원, 경영 컨설팅 등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맞춤 처방’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만 잘해선 소용없다”

"ESG는 단체전"…협력사 챙기는 삼성·LG
국내 대기업들이 협력사 ESG 챙기기에 나섰다. 확 달라진 경영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협력사들을 돕겠다는 것이 주요 기업의 공통된 설명이다. 공급망 전체의 ESG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목적도 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중소기업이 ESG 경영을 실천하기에는 비용과 정보의 벽이 높다”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ESG 경영을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협력회사 리스크 통합관리시스템인 ‘G-SRM’을 운영 중이다. 협력사에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에 나서겠다는 의미다. 2500여 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공장 구축지원 사업도 ESG 경영과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생산 공정을 전산화·고도화하면 ESG 관련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포스코건설도 ‘포스원’으로 불리는 협력업체 정보공유시스템을 구축했다. 포스원의 역할은 G-SRM과 비슷하다. 협력사의 공사계약 내역, 납기 일정 등의 정보를 들여다보고 문제가 될 만한 요소가 있는지를 찾아낸다.

협력사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LG전자는 지난 9일 250여 개 협력사를 대상으로 안전사고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안전관리 우수 사례를 소개하고 ESG 경영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한 대기업 ESG 담당 임원은 “글로벌 기업은 물론 기관투자가도 개별 기업이 아니라 공급망 전체의 ESG 수준을 평가하기 시작했다”며 “협력사에서 오염물질이 누출되거나 안전사고가 발생해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탄소 못 줄이면 거래처에서 배제”

글로벌 기업들은 국내 대기업보다 단호하다. 자체적으로 ESG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협력업체와의 거래를 끊어버리는 방법으로 ESG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은 최근 글로벌 대기업의 지속가능경영·공급망 전문가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응답자 중 15%가 “탄소중립 전환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있는 공급업체와의 거래를 중단하는 작업에 나섰다”고 밝힌 대목이 눈에 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애플이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전 세계 협력업체 110여 곳에서 탄소중립(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에서는 SK하이닉스, 서울반도체 등이 탄소중립 협력사 명단에 포함됐다. 이 기업들이 애플과의 거래를 이어가려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계약 대상 기업뿐 아니라 그 회사가 거래하는 공급망까지 들여다본다”며 “국내 대기업 입장에선 싫든 좋든 협력업체의 ESG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SC 측은 탄소를 줄이지 않는 공급업체와 거래를 중단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비율이 2024년 62%, 2025년 7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움직임의 불똥이 한국으로 튈 수 있다고도 했다. SC는 2030년 한국 공급업체들의 잠재적인 수출 손실 규모가 최대 1425억달러(약 158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수빈/김대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