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 공급 부족 사태로 텅빈 충북 제천 한 시멘트 공장의 저장고
시멘트 공급 부족 사태로 텅빈 충북 제천 한 시멘트 공장의 저장고
시멘트업계가 이달부터 오는 8월까지 대규모 설비 보수를 계획하고 있어 시멘트 공급 부족 사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정부 환경 규제에 따른 친환경 설비 도입과 주52시간 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영향으로 보수 기간이 한 달 이상 길어져 생산차질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멘트 수급 상황 만을 고려하면 보수 일정을 잡지 않고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맞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이라며 “시멘트 수급 불안정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3월보다 개선됐지만 수급 불안 장기화6~8월 대보수 앞두고 긴장감

10일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지난달말 국내 시멘트 보유량(재고)은 99만t으로 전년 동월 대비 26%감소했다. 시멘트 재고가 달랑 사흘치 밖에 남지 않아 일부 지방 건설 공사 현장이 멈춰섰던 지난 3월말 ‘시멘트 공급 대란’ 당시 재고(63만t) 보다는 다소 늘어난 상태다. 지난달 예년보다 비가 많이 왔고 철근 공급 부족으로 건설 공사 현장 조업 중단일수가 길어지면서 시멘트 수요가 일시적으로 감소한 영향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급 부족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업계는 보통 저장능력(210만t) 대비 최소 60% 이상의 시멘트를 재고물량(126만t)으로 확보해왔다. 하지만 현재 최소 재고물량의 78%밖에 확보해놓지 못한 상태다. 여전히 하루 생산량(15만t)보다 출하량(20만t)이 더 많다. 한 시멘트공장 직원은 "여전히 공급이 부족해 '당일 생산, 당일 출하'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일부 공장에선 시멘트 운송차량들이 시멘트를 먼저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 따르면 쌍용C&E와 한일현대시멘트, 성신양회는 내달부터, 한일시멘트는 이달 말부터, 아세아시멘트와 한라시멘트는 8월부터 보수에 들어갈 계획이다. 전력설비 보수와 소성로 내화벽돌 교체 등 일반 보수 작업을 비롯해 폐플라스틱 이물질 제거 장치 개선, 미세먼지 저감 장치 개선, 예열기 설비 교체 등 친환경 설비 보수가 진행될 예정이다. 예년엔 여름철 보수 기간이 2주 정도로 짧았지만 올해엔 한 달 이상 걸릴 전망이다.

정부 환경규제 강화에 주52시간제, 중대재해법 등으로 보수 기간 길어져

6~8월 대규모 설비 보수를 미룰 수 없는 건 시멘트업계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도입으로 '탈석탄'설비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멘트업계에 부과하는 질소산화물 배출 부과금 역시 작년 205억원에서 올해 270억원으로 31%급증해 비용을 절감하려면 하루 빨리 설비를 교체해야한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친환경설비에만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한 쌍용C&E는 올해 추가로 800억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폐플라스틱 등 순환자원의 유연탄 대체비율을 작년 28%에서 올해 45%로 높일 계획이다. 한일시멘트 역시 대규모 투자를 통해 대체비율을 작년 35%에서 올해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시멘트 생산 차질을 감수하면서 보수 일정이 길어진 데는 주52시간제와 내년 시행예정인 중대재해처벌법의 영향도 컸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업체들이 주52시간제에 따른 비용 부담과 사고 예방을 위해 협력사의 야간·주말 근무를 없앴다”며 “내년부터 작은 인명 사고라도 나면 대표이사가 구속될 수 있기 때문에 올해부터 위험한 작업은 무조건 천천히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