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K8 하이브리드 모델./ 사진=기아
기아 K8 하이브리드 모델./ 사진=기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장기화로 출고 대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K8 구매 대기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내년 그랜저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이 출시를 앞두고 있어서다. K8 인도까지 최대 7개월이 걸리는 상황에서 그랜저로 마음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점차 늘어나는 분위기다.

출고 밀리는 K8…내년 그랜저 출시에 위기감↑

9일 현대차의 신차 출시 로드맵에 따르면 내년 그랜저 7세대 풀체인지 모델 출시가 예정됐다. 하이브리드 모델도 나온다. 7세대 그랜저 코드명은 'UN7'이다. K8과 동일한 3세대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며 기존 준대형급에서 대형급으로 차체를 키워 돌아온다. 전장이 5m가 넘는 K8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K8 못지않은 최첨단 사양도 대거 탑재될 전망이다.

두 차량은 대표적 맞수다. K7 시절부터 그랜저의 경쟁 상대로 평가받았지만 2010년을 제외하고는 판매량으로 그랜저를 이긴 적이 없다. 출고가 지연되는 K8가 그랜저 출시를 신경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K8 출고 적체는 심각한 상황이다. 앞서 고육지책으로 기본 적용된 옵션 사양을 빼는 '마이너스 옵션'을 도입했을 정도다. 기아는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원격스마트주차보조(RSPA) 기능을 빼면 출고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RSPA 미적용 기준 2.5 가솔린은 출고까지 1개월, 하이브리드는 4개월, LPI는 7개월 기다려야 한다. 3.5 가솔린의 경우 대기 기간이 이륜구동 모델은 1개월, 사륜구동 모델은 2개월이다. 기아는 RSPA 생산이 10월 이후에야 정상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반기 차량용 반도체 상황도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기아는 최근 일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비공개 콘퍼런스콜에서 하반기 반도체 수급이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완전 정상화까지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물론 가장 힘든 시기였던 지난 4~5월과 비교하면 수급 상황이 다소 개선되겠지만 완전 해소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전날 "이번 달(6월)은 4~5월과 비교해 자동차산업 가동 상태가 나아진 측면도 있지만, 하반기에도 완전히 수급이 풀린다고 자신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K8 계약을 포기하고 내년 그랜저 출시를 기다리겠다는 기류도 형성되고 있다. 한 기아 영업점 관계자는 "K8 고객 중 그랜저 출시를 언급하며 계약을 취소한 고객들이 최근 늘었다"고 했다.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서도 K8과 그랜저 풀체인지, 혹은 올해 출시된 그랜저 스페셜 트림 '르블링'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글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7세대 그랜저 출시 밀릴 수도"

'마이너스 옵션'까지…출고 밀려 고민인 '기아 야심작' K8
일각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를 고려해 7세대 그랜저 출시 일정도 다소 밀릴 수 있다는 전망을 제기하고 있다. 그랜저가 생산되는 아산공장에 현대차 두 번째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6 생산라인이 투입, 전기차 생산이 우선될 수 있다는 점도 출시 지연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내년 하반기 양산 계획만 나와 있다. 다만 올해 아이오닉6 생산라인이 깔리고 여기에 생산이 집중되다 보면 그랜저 출시 일정이 변동될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6년 11월 출시한 현 6세대 그랜저는 2세대 플랫폼으로 제작된 차량이다. 이 때문에 3세대 플랫폼 기반 K8에 밀리지 않고 국산차 1위 자리를 유지하려면 내년 풀체인지 출시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올해 그랜저는 스페셜 트림인 르블랑 출시로 K8 신차 효과에 대응하고 있지만 새단장한 K8 기세가 상당하다.

사전계약 첫날에만 1만8015대를 기록한 K8은 출시 첫 달인 4월 5017대, 5월 5565대가 판매됐다. K8은 지난달 계약 건수가 1만대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지만 생산 여력 한계로 출고가 밀려 판매량 집계치가 5000여대 수준에 그친 상황이다. 그랜저는 지난달 7802대 팔리는 등 올해 들어 월평균 8669대 판매량으로 승용 부문 판매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