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에 파묻히는 사과나무 > 지난 7일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충남 예산의 한 사과농장에서 굴착기를 동원해 병든 나무를 땅에 묻고 있다. 충청남도는 도내 과수화상병이 확산하자 지난달 31일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연합뉴스
< 땅에 파묻히는 사과나무 > 지난 7일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충남 예산의 한 사과농장에서 굴착기를 동원해 병든 나무를 땅에 묻고 있다. 충청남도는 도내 과수화상병이 확산하자 지난달 31일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연합뉴스
정체불명의 과수화상병이 전국 사과 농가로 확산하면서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사과 가격이 더욱 치솟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역대 가장 길었던 장마로 수확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올해는 전염병까지 겹쳤다. 벌써부터 대형마트 바이어들 사이에선 “과수화상병이 장기화될 경우 올가을 사과가 거의 자취를 감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수화상병은 약도 없고 원인도 밝혀지지 않아 방역당국은 사실상 확산세가 약해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8일 유통업계와 농업법인 등에 따르면 나무가 타버린 것처럼 말라 죽는 과수화상병이 충청 지역을 넘어 경북으로 퍼지고 있다. 경북은 국내 최대 사과 재배 지역이다. 과수화상병은 원인을 모르고 치료제도 없다. 발병한 나무를 빨리 묻어 없애는 게 사실상 유일한 처치법이다. 일선 농가에서 하고 있는 방역도 이동과 접근을 최대한 자제하는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수화상병이 올해 처음 발생한 건 아니다. 2015년 국내 발생 이후 매년 생기는 질병이지만 올해는 발병 시기가 예기치 못하게 빨랐던 것이 피해가 더욱 커진 이유다. 초동 대응이 늦어지면서 확산세가 다른 해보다 빨랐다. 한 대형마트 과일 바이어는 “과수화상병은 보통 5월 말 발병해 6월까지 퍼지는데 올해는 4월부터 확산하기 시작했다”며 “일찍 발생한 이유조차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유통업계에선 전염병의 영향으로 그렇지 않아도 ‘역대급’ 고공행진 중인 사과 가격이 더 올라갈 거란 전망이 나온다. 팜에어·한경 한국농산물가격지수(KAPI)가 산출한 올해 평균 사과값은 ㎏당 3380원(경매낙찰가 기준)으로 2019년 2066원에 비해 약 64% 올랐다. 작년 여름 장마가 역사상 가장 길었고, 수확기인 9월에도 태풍이 잇달아 덮쳐 수확량이 크게 줄어서다. 지난 7일 기준 사과 가격은 2013~2021년 평균(적정가)보다 29.35% 높다. 비축해놓은 사과마저 줄어들면서 가격은 점점 더 오르는 추세다. 팜에어·한경에 따르면 이날 ㎏당 사과 가격은 1주일 전보다 6.63% 올랐다.

과수화상병 확산세가 이대로 지속될 경우 올 추석 차례상에선 사과를 찾아보기 힘들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예년이라면 가을께 햇사과 물량이 나오면서 수급에 숨통이 트였겠지만 올해는 전염병으로 햇사과 공급마저 기대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사과는 가을에 수확해 1년간 먹는 대표적인 저장 과일이어서 공급 부족이 누적되면 여파가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현재도 선물세트에 쓰이는 최상급 사과는 가격이 3배 가까이 뛰었는데, 올가을에 10배가 안 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며 “올 추석 선물세트에서 사과를 찾기 힘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수화상병 확산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과수화상병은 기온이 25~27도일 때 퍼지는 속도가 더 빨라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