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왜 글로벌 명품을 못 만드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물음은 ‘헛소리’로 치부됐다.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역사와 기술 전통이 결합된 거대 문화 자본을 갖고 있는 나라만이 ‘에·루·샤’로 상징되는 명품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의 패션 재벌들도 유럽 명품 브랜드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K팝을 앞세운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데다 신세계그룹 등 대기업들이 K명품 브랜드를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어서다.

신세계가 지난 3월 선보인 ‘뽀아레’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이 10년간 공들인 야심작이다. 한때 샤넬과 경합을 벌이다 명품으로서 철학과 유산만 남긴 채 사라진 프랑스 브랜드를 신세계가 나서 명품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이르면 내년께 명품 본고장 파리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선글라스 등 아이웨어 브랜드인 젠틀 몬스터는 한국 토종 브랜드로 출발해 세계 50여 개국으로 진출한 대표 사례다. 백화점 명품 바이어들이 한국 브랜드 중 세계에서 통한 것을 꼽으라고 할 때 첫손에 꼽히는 몇 안 되는 브랜드다.

2010년 김한국이라는 디자이너가 만든 젠틀 몬스터는 ‘셀럽 마케팅’과 거대 자본과의 협업을 통해 명품 반열에 서서히 근접하고 있다. 2014년 배우 전지현을 모델로 중국에서 입소문을 얻자 2017년 LVMH 계열사로부터 600억원을 투자받았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음악과 영화 등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지금이 한국 패션·뷰티업계엔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