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사용자" 중노위 판정 근거 들여다보니...
"세상에 이런 일이…이제 대통령이 단체협상장에 나올 듯"(A대기업 임원) "예상됐던 판정이지만, 우려가 현실로…"(B법무법인 변호사)

지난 2일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놓은 이른바 'CJ대한통운 사건' 판정에 대한 반응이다. CJ대한통운이 자사 근로자가 아닌 택배 대리점 소속 기사의 '사용자'라는 판정이 나오면서 향후 산업현장의 노사관계는 물론 공공부문에서도 일대 후폭풍이 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노위가 이번 판정을 내리면서 법적 근거가 아닌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다분히 주관적인 기준을 도입해 사건을 정의하고 가름했기 때문이다.

◆서울지노위 초심 뒤집은 중노위
중노위는 지난 2일 CJ대한통운이 자사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의 사용자라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 앞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초심 판정을 뒤집은 것이다.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택배노조는 지난해 3월 자신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집배점(대리점)이 아닌 원청인 CJ대한통운에 단체교섭을 요청했다. 택배기사 1인당 1주차장 보장 등 작업환경 개선의 열쇠를 CJ대한통운이 쥐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본사는 택배기사들과 마주 앉을 이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택배업은 본사가 각 대리점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고, 각 대리점은 다시 택배기사와 택배화물 운송에 관한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에 택배노조는 지난해 9월 서울지노위에 'CJ대한통운의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며 구제를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지노위는 두 달 만인 11월 'CJ대한통운과 대리점 택배기사 사이에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아 당사자 적격이 없다'는 취지로 각하 판정했다. 이후 택배노조는 서울지노위 초심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올해 1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고, 중노위가 이번에 택배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동안 친노조 행보를 보여온 박수근 중노위원장이 이번 사건 판정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직접 현장점검에 나서는 등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결론이지만 경영계는 물론 법조계에서는 '천지개벽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판정문이 공개되기도 전에 "대법원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은 물론, 3년 전 동일한 취지의 사건에서 CJ대한통운은 집배점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했던 중노위 스스로의 결론마저 뒤집은 것"이라는 비판 성명을 낸 이유다.

◆'실질적 지배력설'이 뭐기에…
그렇다면 중노위는 어떤 근거와 기준으로 CJ대한통운이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도 않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라는 결론을 낸 것일까.

전문가들은 2010년 이른바 '현대중공업 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기원을 찾는다. 대법원은 2010년 3월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에서 사용자의 범위와 관련해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개입했다면 사용자에 해당한다"(대법원 2007두8881)고 판결했다. 이른바 '실질적 지배력설'의 단초를 만든 판결이다.

실제 중노위는 이번 판정에서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의 유무보다는 '실질적 지배력'에 방점을 두고 판정했다. 중노위는 이번 판정의 요지라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가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하는 상대방은 사용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 뿐만 아니라 원·하청 등 간접고용 관계에서 원청 사용자가 하청 근로자의 노동조건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일정 부분에 대해서는 원청 사용자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과 관련해서는 "대리점 택배기사는 CJ대한통운의 택배서비스 사업의 수행에 필수적인 택배운송 노무를 제공하고 있고, CJ대한통운이 구축·관리하는 택배서비스 사업 시스템에 편입돼있다"며 CJ대한통운은 대리점 택배기사가 서브터미널에서 배송상품 인수, 집하상품 인도 등의 노무를 제공하고 있는 것과 관련 구조적인 지배력 내지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에 대해 '실질적 지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공기관 원청은 대통령? 공공부문 파장 '주목'
중노위는 이번 판정에 대해 "CJ대한통운과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노조 사이의 단체교섭과 관련한 개별 사안을 다룬 것"이라며 "원청의 하청노조에 대한 단체교섭 의무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근로계약은 물론 직접 위·수탁 계약관계도 없는 원청이 사용자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일반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경영계를 비롯한 산업현장에서는 이미 '중노위 리스크'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선 지난해 민주노총 산하 전국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산하 하도급업체 노조가 현대차를 상대로 직접 교섭을 요구했던 사안이 있다. 당시 중노위는 민주노총 산하 12개 노조의 노동쟁의 조정신청에 "당사자 간 노동쟁의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우리 위원회 조정대상이 아니다"라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중노위는 "사용자들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하도급 사용자들과 공동 노력하라"는 이례적 '권고사항'을 붙였다. 원청(현대차)이 쟁의의 당사자는 아니라면서도 하청 근로자들과 무관하지도 않다는 의미였다. 이번 CJ대한통운 판정에 따라 다시금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공공부문으로 불길이 옮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비정규직 노조의 요구에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자체 노·사·전문가협의회를 꾸려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중노위의 이번 판정대로라면 이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교섭 대상, 즉 '진짜 사장'은 각 부처 장관, 나아가 대통령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백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