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년엔 나라가 진 빚의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 할 겁니다. 한국형 재정준칙은 이를 막기엔 너무 헐렁합니다. 재정준칙은 헌법과 같은 위상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옥동석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사진)은 정부가 도입하기로 한 ‘한국형 재정준칙’의 보완이 시급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옥 전 원장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의 저서 《케인스는 어떻게 재정을 파탄냈는가》를 지난달 편역해 출간했다. 케인스식 재정정책이 포퓰리즘 정치 환경 속에서 무한한 재정확대를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지적이 국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옥 전 원장의 얘기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6년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2036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70.6%가 되면 정부가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옥 전 원장은 “국가채무가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그동안 정치권은 이런 문제에 무관심했다”고 비판했다.
옥 전 원장은 균형재정 원칙을 지켜내려면 엄격한 재정준칙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25년부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내,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 준칙 역시 예외규정이 많고 시행령에 지나지 않아 준칙으로서 제 기능을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옥 전 원장은 “재정준칙을 법률로 엄격하게 세운 독일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2009년 연방헌법을 개정해 △균형예산 원칙의 확립 △매년 GDP 0.35% 구조적 채무부담 허용 △채무상환을 위한 관리계정의 설치 △비상상황에서의 예외적 채무부담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재정준칙을 도입했다.
옥 전 원장은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중립적인 기구도 설치해 준칙 준수 여부를 감시해야 한다”며 “재정운용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2일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2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향후 등급 전망도 기존과 같이 ‘안정적(stable)’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을 한국이 상대적으로 잘 극복하고 올해 3.5%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다. 다만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무디스가 한국에 매긴 신용등급 Aa2는 Aaa, Aa1 다음으로 높은 등급으로, 일본과 영국보다 높고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다.한국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나라는 Aaa를 받은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룩셈부르크,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Aa1 등급을 받은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14개국이다.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부터의 탄력적 회복을 뒷받침한 아주 강력한 펀더멘털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0%로 비슷한 신용등급을 가진 다른 선진국보다 양호했던 점도 높게 평가했다.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가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월 제시한 3.1%보다 0.4%포인트 높은 수치다. 무디스는 “한국 제조업 수출품에 대한 강력한 수요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한국 경제가 올해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하지만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historically high levels)’”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무디스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올해 44%로 오르는 데 이어 60%까지 꾸준히 늘어날 예정임을 강조하며 “(한국이) 장기간 유지해온 재정규율 이력이 시험에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지속적인 압력,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 리스크 역시 한국 신용등급의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무디스는 늘어나는 국가채무비율이 단기적으로는 한국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으로 봤다. 세수가 점차 회복되고 저금리 여건 아래 부채비용이 안정적 수준인 만큼 한국의 부채여력(debt affordability)이 강하게 유지될 전망이라는 게 무디스의 설명이다.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12일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2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향후 등급 전망도 기존과 같이 ‘안정적(stable)’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충격을 한국이 상대적으로 잘 극복하고 올해 3.5% 안팎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다. 다만 무디스는 한국의 인구 고령화, 계속 늘어나는 국가채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무디스는 이날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및 전망을 기존과 같은 수준(Aa2,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Aa2 신용등급은 Aaa, Aa1 다음으로 높은 등급으로, 일본과 영국보다 높고 프랑스와 같은 수준이다.한국보다 국가 신용등급이 높은 나라는 Aaa를 받은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룩셈부르크,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Aa1 등급을 받은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 14개국이다.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유지한 배경에 대해 “코로나19 펜데믹(대유행)으로부터의 탄력적인 회복을 뒷받침한 아주 강력한 펀더멘털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무디스는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0%로 유사한 신용등급을 가진 다른 선진국보다 양호했던 점도 높게 평가했다.동시에 무디스는 올해 한국 경제가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2월에 제시했던 3.1%보다 0.4%포인트 높은 수치다. 무디스는 “한국 제조업 수출품에 대한 강력한 수요와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올해 3.5%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하지만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채무가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historically high levels)’에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무디스는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올해 44%로 오르는 데 이어 60%까지 꾸준히 늘어날 예정임을 강조하며 “(한국이) 장기간 유지해온 재정규율 이력이 시험에 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지속적인 압력,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 리스크 역시 한국 신용등급의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무디스는 늘어나는 국가채무비율이 단기적으로는 한국에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것으로 봤다. 세수가 점차 회복되고 저금리 여건 아래 부채비용이 안정적인 수준인 만큼 한국의 부채여력(debt affordability)이 강하게 유지될 전망이라는 게 무디스의 설명이다.기획재정부는 무디스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을 지적한 데 대해 “신용평가사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 정부의 재정 안정화 노력에 관심이 크다”며 “한국 정부는 국회와 함께 재정준칙 법제화를 추진하는 한편, ‘2021~2025 국가재정운용계획’ 마련 시 총량관리를 강화하는 등 재정 안정화 노력에도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정의진 기자
나랏빚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통상 국가채무라 하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빚으로 확정된 것을 가리킨다. 이 빚의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846조9000억원이다. 여기에 비확정부채를 더한 것을 국가부채라고 한다. 국가채무에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등 연금충당부채 등을 더한 것이다. 국가채무가 정부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이라면, 비확정부채는 잠재적인 빚이라는 의미다. 광의의 나랏빚인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985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빚 증가속도 등을 감안하면 올 연말에는 이 규모가 2100조원을 웃돌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文정부 이후 나랏빚 급증지난해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정을 푼 것은 불가피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정부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했다. 2019년 말 본예산을 짤 때 계획했던 것보다 67조원을 더 썼다. 총지출은 485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4조9000억원 증가했다.반면 세금 수입은 신통치 않았다. 2019년부터 시작된 경기 불황으로 법인세가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수입은 285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조9000억원 감소했다. 기금수입 등을 포함한 총수입은 478조8000억원으로 5조7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그 결과 재원 중 상당부분은 적자 국채 발행에 의존했다. 이는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빚’이다. 이에 따라 1인당 국가채무도 급증했다. 지난해 1인당 국가채무는 1635만원으로 1년 전 1409만원보다 200만원 이상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6년 1212만원과 비교하면 34.9% 늘었다.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초반 부채를 급격하게 늘린 것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국가부채 규모로 보면 2016년 말 1433조원에서 2017년 말 1555조8000억원, 2018년 말 1683조4000억원, 2019년 말 1743조7000억원 등으로 불어났다. 선심성 복지 등에 재정을 대거 투입한 결과다. 당장 적자 축소 나서야정부는 올해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확장 재정정책을 이어갈 전망이다. 지난달 1차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미 적자 규모가 본예산 기준 956조원에서 965조9000억원으로 예상보다 커졌다. 향후 전 국민 지원금 등을 또 추진할 경우 올해 국가채무는 최대 100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여기에 미래 연금 지급을 위한 연금충당부채 등 비확정부채를 더하면 한국의 올해 말 기준 국가부채는 2100조원까지 늘어나게 된다.정부가 이 같은 확장 기조를 밀어붙이는 데에는 재정건전성 문제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정부는 국가결산 브리핑에서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주요국 대비 양호한 수준”이라는 설명을 반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 증가폭이 6.2%포인트에 그쳐, 세계 평균(14.1%포인트)과 선진국 평균(17.9%포인트) 등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등이 근거다.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상향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위기 상황에서 큰 폭으로 늘어났던 적자폭과 채무비율 증가속도를 제어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계 각국은 성장률 상향과 함께 올해부터 적자폭을 줄이려는 시도를 시작했다”며 “한국도 지난해 5.8%까지 치솟은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을 3%대까지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정부가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재정준칙에 대해선 시행 시점이 늦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소영 교수는 “2025년부터 적용 예정인 재정준칙을 기다리기보다 내년부터 적자와 채무 감축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