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갔다"던 LCD·8인치 웨이퍼 '화려한 부활'

코로나 여파로 생산시설 투자 되살아나
구형 패널 취급 받던 액정표시장치 몸값 올라
업계에서 "한물갔다"고 평가받던 소재·부품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세계적 반도체 품귀 영향에 '구형' 칩을 만드는 8인치(200mm) 웨이퍼(반도체 기판) 생산시설 투자가 되살아났고,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도 구형 패널 취급을 받던 액정표시장치(LCD) 몸값이 오르고 있다.
8인치 웨이퍼 '귀한 몸' 됐네
28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는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이 8인치 웨이퍼 생산능력을 오는 2024년까지 전년 대비 17% 늘릴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한 달간 만들어내는 8인치 웨이퍼 생산량은 3년 뒤 660만장에 달한다. 지난해 글로벌 기준 월 평균 565만장을 생산한 것을 감안하면 약 95만장 늘어난 규모다.

8인치 팹(생산시설) 장비 투자액도 지난해 30억달러(약 3조3600억원)에서 올해 40억달러(약 4조4800억원)로 늘어날 전망이다. 아짓 마노차 SEMI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해당 보고서에서 "아날로그와 전력 관리, 디스플레이 구동 반도체(DDI),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등에 의존하는 5G, 자동차 및 사물인터넷(IoT)용 기기 수요가 늘어나는 데 대응해 웨이퍼 제조업체들이 이 기간 22개의 새로운 8인치 웨이퍼 공장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8인치 웨이퍼는 12인치(300㎜) 웨이퍼에 비해 생산성이 낮다는 이유로 한물간 기술로 취급됐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경쟁력인 반도체 시장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8인치의 수익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8인치 웨이퍼는 90nm(나노미타) 이하로 반도체 선폭을 미세하게 만들기가 어렵다. 회로 선폭이 좁아야 생산량이 높아지고 전자 이동속도가 빨라져 성능이 개선되지만 8인치 웨이퍼는 원판 자체가 작아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이미지센서, DDI, MCU 등 발주 업체마다 다른 규격을 요구하거나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 생산에 쓰였다.

반면 12인치는 8인치 대비 직경이 커 생산량을 2.5배가량 늘릴 수 있는 대신 원가도 높다. 삼성전자(78,500 -0.63%)가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 두뇌' 격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 같은 로직 반도체를 만드는 데는 모두 12인치 웨이퍼가 쓰인다. 규격이 일정하고 대량 생산에 적합해서다. 2000년 이후 8인치 웨이퍼 팹은 약 20% 줄어든 것으로 업계에선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로 반전이 일어났다.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판매량 감소를 대비해 반도체 부품 발주를 줄였고 반도체 제조사들은 차량용 대신 수요가 증가한 노트북, 태블릿PC 등의 생산라인을 늘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자동차 수요 회복이 빨라 8인치 웨이퍼 기반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또 IoT, 5G 같은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필요한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는 주로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반도체라 8인치 웨이퍼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기업들도 잇따라 8인치 생산시설 확충에 나섰다. SK하이닉스(112,500 -1.32%)는 최근 8인치 파운드리 생산능력 2배 확대를 공식화했다. DB하이텍(61,000 -0.49%)도 올 들어 8인치 생산능력을 월 9000장 추가했다.
다시 뜨는 LCD
삼성디스플레이 쑤저우 LCD 공장.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디스플레이 쑤저우 LCD 공장.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중국 업체들이 장악한 LCD 패널 몸값도 급격히 오르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위츠뷰에 따르면 지난달 하순 LCD 패널값은 전월 대비 6.2% 올랐다. 올 1분기 LCD 패널값이 전년 동기 대비 14.5% 증가한 데 이어 2분기에도 가격 상승세가 이어졌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전 세계 절반 이상의 LCD 패널 출하를 차지하는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치킨 게임'에서 수익성 위주 가격 전략으로 선회했다"고 분석했다.

원인은 코로나19로 재택근무·화상회의 등으로 TV, PC, 노트북 등 IT 기기에 대한 수요가 폭증한 영향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TV 출하량은 2억2535만대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올 1분기에도 전 세계 TV 출하량은 5122만6000대로, 지난해 1분기(4661만2000대)와 비교해 9.9% 증가했다. 전 세계에 출하된 TV의 약 90%가 LCD TV다.

LCD 패널이 대부분인 노트북 역시 지난해 판매량이 9년 만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노트북 대수는 총 1억7300만대 수준으로 2011년 이후 가장 많이 팔렸다. 업계에선 올해 노트북 시장규모가 1억7500만대, 내년에는 1억7700만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경제전문 매체인 중국경제망은 "LCD 수요가 크게 늘면서 공급자 우위의 시장이 됐다"며 "가격 주도권은 중국에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전 세계 LCD TV 패널 시장에서 BOE·CSOT 같은 중국 제조사들이 약 55%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국내 기업들은 약 15%를 점유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과 LG는 패널 사업에서 LCD 비중을 줄여 왔다. 중국 업체들이 워낙 싸게 공급했던 탓에 수익성 확보가 안 됐기 때문. 삼성은 지난달 중국 쑤저우에 있는 LCD 생산 라인을 CSOT에 매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처럼 변하면서 삼성·LG는 당초 올해까지만 하고 접기로 했던 LCD 생산을 연장하기로 했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대표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회사 이익을 우선 고려하고 시장 상황 등을 반영해 내년까지 LCD 생산을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도 국내 TV용 LCD 패널 생산라인 철수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생산을 연장하기로 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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