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RO필터 사업부 직원들이 테스트를 마친 수처리 필터를 살펴보고 있다.  /LG화학 제공
LG화학 RO필터 사업부 직원들이 테스트를 마친 수처리 필터를 살펴보고 있다. /LG화학 제공
지난 13일 충북 청주 LG화학 역삼투압(RO: reverse osmosis) 필터 공장. 35만㎡ 규모 공장 내 설비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공장에선 바닷물을 걸러 염분이 없는 ‘담수’로 만들어 주는 RO 필터를 생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공장 가동률은 최근 100%에 육박하고 있다. 2015년 공장 설립 이후 최고치다. 약 150만 명이 사용할 물을 걸러낼 수 있는 규모의 RO 필터를 생산 중이다. 형훈 LG화학 RO필터 사업담당은 “RO 필터 가격을 30%가량 올렸는데도 주문이 급증하고 있다”며 “생산이 달려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 ‘봇물’

LG화학 "담수화 필터, 중동서 주문 폭주"
RO 필터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서다. 중동에서 특히 수요가 많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중동 국가는 과거 기름을 팔아 번 돈으로 해수 담수화 플랜트를 많이 지었다. 두바이, 아부다비 등의 대도시를 글로벌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물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다단증발방식(MSF), 다단효용방식(MED)의 플랜트를 주로 지었다. 두 방식 모두 바닷물을 끓여 증발시키는 과정을 거쳐 담수를 생산한다. 이런 방식은 에너지를 많이 쓰고 대기 오염물질도 다량 배출하는 게 단점이다.

중동 국가들은 2000년대 초반 지어진 해수 담수화 플랜트의 내구연한(약 20년)이 다하자 최근 RO 필터 방식으로 대대적인 전환 작업에 나섰다. RO 필터는 높은 압력을 가해 물 분자를 농도가 낮은 쪽으로 통과시켜 정화하는데, 담수 생산비용이 증발식에 비해 낮고 환경 오염도 적다.

최근에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도 RO 필터 구매를 늘리고 있다. 생활용뿐 아니라 산업용에 필요한 담수도 부족해서다. 지난해 LG화학은 중동뿐 아니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부터 대규모 RO 필터를 수주했다.

국내에서도 RO 필터 수요가 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충남 서산 대산산업단지에 필요한 용수 확보를 위해 해수 담수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내 첫 공공 주도 해수 담수화 사업이다. 2017년 가뭄으로 물 공급에 차질을 빚은 뒤 추진됐다.

업계에선 제조 공정에서 고도로 정제된 초순수가 필요한 반도체, 화학, 배터리 등 주요 산업 분야에서도 RO 필터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한다. 글로벌 수처리 조사기관 GWI에 따르면 RO 필터 시장은 2020년 1조1626억원에서 2024년 1조5107억원으로 약 30% 커질 전망이다.

사업 시작 5년 만에 본궤도 올라

LG화학이 RO 필터 사업에 진출한 것은 2014년이다. 미국 ‘나노H2O’란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다. 나노H2O의 RO 필터는 염분을 잘 제거하면서 담수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양산 경험이 없어 사업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 LG화학은 2015년 청주에 공장을 짓고 시험 생산을 거쳐 이듬해인 2016년 양산 설비를 들였다. 수율은 80%를 밑돌았다. 100개를 만들면 20개 넘는 불량품이 나왔다. 주문도 많지 않아 설비의 절반 이상을 놀렸다.

LG화학은 수율을 잡는 데 우선 집중했다. 공정 방식을 바꾸고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다. 2019년 수율이 90%를 넘어서며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영업을 강화했다. 전략은 단순했다. 경쟁사 대비 더 좋은 제품을 더 싸게 팔았다. 제품력엔 자신이 있었다. 염분 제거율을 99.89%까지 높였다. 듀폰, 도레이 등 경쟁사(제거율 99.8%)를 압도했다.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고객사들은 LG화학 제품을 선호했다. 바닷물을 통과시키면 염화나트륨 분자 1만 개 중 단 11개만 남았다. 경쟁사 제품은 20개가 남았다. 정수량이 많을수록 LG화학 필터의 강점은 더 부각됐다.

LG화학 RO 필터 매출은 2019년 1000억원을 처음 넘겼다. 올해 예상 매출은 1500억원에 이른다. 듀폰, 도레이 등과 함께 글로벌 ‘톱3’로 올라섰다. 형 담당은 “물 부족은 인류가 당면한 과제”라며 “10~20년 뒤 제2의 배터리 사업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청주=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