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도급 계약한 화물차 기사도 근로자
대법원이 노조 활동이 가능한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보다 엄격하게 판단해 오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도 확대하는 판결을 최근 내놨다. 이례적인 판결인데도 노동법 전문 매체만 다루고 있을 뿐이다.

지난달 29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회사 소유의 차량을 임대받아 운전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화물을 운송해온 운송기사가 ‘근로기준법에 의한 근로자’라고 명시적으로 판결했다.

이 운송기사는 레미콘 제조업체인 삼표에서 2011년부터 트랙터와 트레일러를 월 200만원에 임대받은 후 삼표그룹 계열사인 삼표피앤씨의 콘크리트 파일을 운송해 왔다. 한 달 20일~25일 가량 일해 온 이 운송기사는 300만원 가량의 도급 금액을 매달 지급받아 왔다.

운송 업무 도중에 몸을 다친 이 운송기사는 ‘업무상 재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급여 및 휴업 급여를 청구했지만 불승인되자 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쟁점사항은 이 운송기사가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인지의 여부가 됐다. 산재보험법이 정한 보험급여가 지급되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여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서울고등법원은 이 운송기사가 ▲근로계약이 아닌 화물자동차 운전용역(도급) 계약서를 작성했고 ▲사업자로 등록해 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삼표의 취업규칙, 복무규정 등 제반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았다며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자영업자로 본 것이다.

대법원은 정반대로 이 운송기사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결했다. 삼표가 구체적인 업무의 내용을 지정하고 차량 운행 일보의 제출을 요구하는 등 업무 내용을 결정하고 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을 했다고 판단했다.

비록 일정한 사업장에 출퇴근한 것은 아니지만 삼표가 이 운송기사에게 일정한 장소에 상시 대기하도록 하는 한편 차량 위치도 GPS장치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대법원은 삼표와 운송기사 사이에 비록 도급계약이 체결돼 근로자가 아닌 것처럼 운송업무가 운영됐지만,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한” 것이라고 봤다.

또 운송기사가 지급받은 보수는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아니라 운반물량에 의하여 정산한 금액이기는 하다”라면서도 “이러한 성과급 형태의 보수는 노동의 양과 질을 평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임금이라는 성격이 있다”고 판결했다.

도급계약을 맺고 화물 운송 업무를 수행하는 택배기사 등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있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판결은 최초로 보인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자동차를 운송기사가 소유하는 일반적인 ‘지입 차주’와는 달리 이 사건의 경우 트랙터와 트레일러가 회사 소유여서 조금 다른 면이 있다”라고 전제한 뒤 “법원이 근로자성을 계속 확대하려는 입장이 확고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최종석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