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사각지대' 코인판 백태

9월까지 은행 실명계좌 확보 못한 거래소 사실상 폐쇄
"은행과 다리 놓아주겠다" 브로커들, 거액 수수료 요구
잦은 서버 먹통도 논란…보상은 거래소 선의에 기대
< 6000만원 선 무너진 비트코인 > 암호화폐 시장이 16일 약세를 보이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5000만원대로 떨어졌다. 21일 만에 ‘6000만원 벽’이 다시 무너진 것이다. 이더리움도 전날보다 5% 이상 빠졌고, 일부 알트코인(비주류 암호화폐)만 강세를 보였다. 한 시민이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 6000만원 선 무너진 비트코인 > 암호화폐 시장이 16일 약세를 보이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5000만원대로 떨어졌다. 21일 만에 ‘6000만원 벽’이 다시 무너진 것이다. 이더리움도 전날보다 5% 이상 빠졌고, 일부 알트코인(비주류 암호화폐)만 강세를 보였다. 한 시민이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중견 암호화폐거래소의 A 대표는 요즘 “은행과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브로커들의 제안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지난 3월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기존 암호화폐거래소는 오는 9월 24일까지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사업자 신고를 마쳐야 계속 영업할 수 있다. 이때 거래소는 이용자에게 실명계좌를 발급해줄 은행을 구해와야 하는데, 은행 관계자들과 미팅 잡기조차 쉽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는 곳이 많다.

A 대표는 “정체가 모호한 브로커들이 이런 틈새를 파고드는 것”이라며 “연줄을 과시하며 무리한 수수료부터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거절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사업자 신고 요건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고 은행의 판단으로 미뤄놓은 탓에 혼탁한 상황이 가중되고 있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수상한 브로커·잡코인 대놓고 활개
"이참에 눈 먼 돈 한탕"…거래소에 잡코인 상장 제안 10배 폭증

A 대표의 사례는 ‘규제 사각지대’ 코인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태만상의 일부일 뿐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대금은 16일에도 20조원을 넘어섰다. 유가증권시장 규모를 앞지른 것이 더 이상 뉴스도 아닐 정도로 몸집이 커졌다. 하지만 사업자 관리는 물론 코인 상장, 투자자 보호 등이 모두 제도권 밖에 방치돼 있다.

암호화폐거래소에는 “우리가 만든 암호화폐를 상장시켜 달라”는 블록체인 프로젝트 개발사의 요청이 부쩍 늘었다. B 거래소의 상장 담당자는 “상장 제안이 1년 전의 10배 수준으로 폭증했다”면서도 “기술력이 없고 급조된 티가 나는 ‘잡코인’이 많아 대부분 걸러낸다”고 밝혔다. 대행업체를 활용하면 누구나 코인 을 개발할 수 있다. 코인시장에 워낙 많은 돈이 몰리다 보니 거창한 사업계획을 붙이고 유명 거래소에 상장해 ‘눈먼돈’을 쓸어담으려는 세력이 다시 꼬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암호화폐거래소의 모임인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어지러운 시장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적절한 규제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코인법(法)’ 제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어 하반기 국회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정부가 암호화폐 정책에 대한 방향타를 분명히 잡는 게 먼저라는 지적도 많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미온적 입장이고 대선 국면도 다가오고 있어 논의가 순조롭게 이뤄질지 확신이 안 선다”고 했다.
서버 먹통에도 ‘선의의 보상’뿐
최근에는 대형 암호화폐거래소조차 운영의 안정성 측면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빗썸은 4월 이후 공지사항에 올린 지연 안내문만 총 11건이다. 매매·체결(3회), 원화 출금(3회), 접속(2회), 차트 갱신(1회) 등의 지연이 나흘에 한 번꼴로 일어났다. 업비트도 지난 11일 시세가 움직이지 않는 등의 오류로 긴급 점검을 벌였다. 초 단위로 24시간 가격이 변하는 암호화폐 특성상 서버가 잠깐만 멈춰도 투자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대다수 거래소는 업체 측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한 서버 장애에는 보상 책임이 없다는 면책조항을 이용약관에 두고 있다. 업비트는 ‘기업의 책임’ 차원에서 자발적 보상에 나선다고 밝혔지만 예외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거래소 서버가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원인도 적절한 규제와 주무부처가 없다는 데서 찾고 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이런 사고가 증시에서 발생했다면 관련 법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거래소나 증권사가 책임지고 보상에 나설 것”이라며 “암호화폐시장에선 투자자 보호 장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은행권은 9월 말까지 암호화폐거래소에 실명계좌 발급 여부를 결정할 때 사고 이력과 보안 대책 등도 꼼꼼히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암호화폐거래소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해 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며 “거래소의 업태와 법적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보험사가 재보험에 드는 등의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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