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없고 가족도 함께…평균 연봉 8000만원 '꿈의 직장'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택배(宅配)라는 말이 등장한 건 1990년대 초다. 국민통신판매업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면서 집까지 물건을 배달해주는 직업군이 처음 등장했다. 일본식 한자어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지만, 1998년 외환 위기로 실직한 가장들이 너나없이 택배업에 뛰어들면서 어엿한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잡았다.

택배업 자체가 현대 문명의 세례를 받은 새로운 직종인 터라 역사적 기원을 찾는 일이 부질없긴 하지만, 그나마 비슷한 업을 찾는다면 구한말 처음 생긴 우체부를 꼽을 수 있겠다. 1884년 우정총국이 생기면서 당시 경성과 인천을 걸어서 오가던 체신부들은 노역에 가까운 고된 일과로 인해 하대(下待)받기 일쑤였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택배 기사에 대한 인식도 과거 체신부의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무거운 택배 상자를 들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는 택배 기사들은 늘 동정의 대상이다. 정부는 이들을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한다. 빚에 허덕이다 신용 불량의 늪에 빠진 이들이 마지막으로 택하는 직업이라는 인식도 여전히 강하다.

최근엔 고용의 관점에서 거대 플랫폼 기업에 이용당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주장이 등장했다. 기업에 속하지 못한 채 자신의 차량으로 기름값을 부담해가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노동자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 지대 근로자’라는 이미지에 근거한 주장들이다.
CJ대한통운 택배 근로자 20%가 '가족 기사'
정년 없고 가족도 함께…평균 연봉 8000만원 '꿈의 직장'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소비와 e커머스(전자상거래)의 폭발적 성장은 택배업에 관한 그간의 인식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CJ대한통운이 16일 발표한 자료는 이에 관한 생각의 단초를 던져 준다.

CJ대한통운은 다가오는 ‘부부의 날’(5월 21일)을 맞이해 자사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2만여명을 대상으로 가족관계를 조사한 결과, 남편과 아내가 함께 일하고 있는 부부 택배기사가 2692명(1346쌍)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부부를 포함해 부모, 자녀, 형제, 친척 등 가족과 함께 일하고 있는 택배기사는 4002명에 달했다. 전체의 20% 가량이 ‘패밀리 택배 기사’라는 얘기다.

부부 택배기사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 1800명에서 2019년 2310명, 2020년 2450명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해에 비해 9.9% 늘었다. 가족 단위 택배기사도 지난해 3498명에 비해 14.4% 늘어났다. 자녀에게 세습하는 직업으로까지 택배업의 위상이 올라갔음을 보여주는 통계다. 부부나 가족 택배기사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CJ대한통운은 “물량 증가로 수입이 크게 늘어나면서 외부인을 쓰기 보다는 부부나 가족과 함께 일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라며 “택배 기사가 ‘괜찮은 일자리’이자 ‘가족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일자리’로 자리매김했다”고 분석했다.

CJ대한통운은 보도 자료에서 부부 택배 기사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는데, 스포츠 의류 총판업을 하다가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워지자 뛰어든 A씨 부부, IT(정보기술) 업계에서 일하다 과로가 싫어 일본인 아내와 택배업에 뛰어든 부부가 예로 등장했다. A씨는 “초기엔 사업할 때와 달리 몸 쓰는 일이 낯설어 힘들기도 했지만 비교적 일찍 적응하면서 왜 더 일찍 택배일을 시작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정년퇴직도 없고, 세습도 가능한 직장
CJ대한통운은 국내 1위 물류회사다. 국내 수출품을 해외로 운송하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각종 원자재를 들여오는 회사다. B2B가 주력이던 이 회사가 요즘은 택배 업체로 더 유명하다. e커머스 활황 덕에 택배 물량이 늘면서 택배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대로 급증했다.

택배 기사들 사이에선 연봉 8000만원대를 벌 수 있는 ‘꿈의 직장’으로 불린다. CJ대한통운으로부터 직접 월급을 받는 근로자가 아닌 자영업의 성격을 갖고 있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봉이라는 표현이 적절치는 않지만, 일반 근로자들처럼 연봉으로 환산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택배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 대리점에 속해 있는 택배 기사 중 연 수입이 1억원을 넘는 이들이 대략 20%에 달한다.

유튜브에서 활약 중인 ‘택배 유튜버’들의 얘기도 이와 비슷하다. CJ대한통운에서 일한 지 4~5년 정도 된 20대 후반의 한 청년이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월 소득은 대략 700만원 가량이다. 여기에 차량 할부금, 보험금, 기름값 등 부대 비용(100만~150만원)을 제외하면 한 달에 600만원 안팎의 순수입을 손에 쥔다.

CJ대한통운이 택배 기사들에게 ‘꿈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수입 때문만은 아니다. 한진, 로젠택배 등 다른 택배업체들에 비해 노동 강도도 낮은 편이다. 업계 1위이다 보니 주문량이 많을 뿐더러 대형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 일감이 몰려 있는 경우가 흔하다. 택배 기사들이 가장 힘들게 생각하는 일이 배송 시 상·하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CJ대한통운 물품을 배송하는 택배 기사들은 그만큼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CJ대한통운의 경우 과거와는 달리 택배 현장이 첨단화되면서 작업 강도가 완화된 것도 인기 비결로 꼽힌다. 자동분류기 휠소터(Wheel Sorter)와 소형 상품 전담 분류기 MP(Multi Point) 등 첨단시설들이 택배현장에 설치됐다. 최근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노동단체의 강력한 요구로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엔 4000명 가량의 분류지원인력이 별도로 투입돼 있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물량이 늘어난데 비해 한집에 2~3개씩 배송되는 중복배송이 많아지고, 이동해야 하는 배송구역도 좁아져 작업 효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월수입 4000만원, '택배 재벌'까지 등장
최근엔 ‘택배 재벌’이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쿠팡발(發) 배송 전쟁이 가져 온 부수 현상 중 하나다. 택배업체 관계자는 “경북 칠곡에서 택배일을 하고 있는 한 부부는 쿠팡에 물건을 납품하는 수많은 소규모 판매업체들의 물건 배송을 도맡아 하면서 월 수입이 4000만원까지 올라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쿠팡은 창원, 완주, 청주, 거창 등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7곳에 수조원을 들여 거대 물류센터를 짓고 있다. 물류센터에 모인 물건들을 배송하는 건 쿠팡맨의 몫이지만, 센터까지 보내는 상품의 수량과 종류가 워낙 많다보니 CJ대한통운 같은 택배사들이 이를 맡고 있다.

가족 단위로 택배업을 택한 이들이 많다는 건 많은 수입을 안정적으로 벌 수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유튜브에 출현한 한 택배 기사는 “배송만으로 벌 수 있는 건 월 700만~800만원이 최대(주 6일 근무)”라며 “집하(集荷)라고 불리는 영업을 해야 택배 재벌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칠곡 부부는 이 같은 영업 활동으로 수익을 극대화한 대표 케이스다. 쉽게 말해 배송 일감을 가족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나눠주고, 본인은 남는 시간에 주변 소규모 공장이나 판매업자들과 만나며 택배 영업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CJ대한통운과 같은 ‘꿈의 일터’는 일감이 계속 몰려오는 한 정년 퇴직이나 해고의 위험도 없다. 정규직으로 고용돼 3대 보험 등을 적용받는 ‘쿠팡맨’들도 CJ대한통운 택배 기사로 전직하려는 이들이 줄을 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맨’과 우정사업본부 소속 택배 기사들은 주 5시간 근무와 연봉 5000만원 안팎의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데 비해 CJ대한통운과 함께하는 택배 기사들은 일한 만큼 더 벌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택배업체 관계자는 “CJ대한통운 택배 기사들 중에 나가려는 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곳 일을 잡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CJ대한통운에 한정된 얘기이긴 하지만, 요즘의 택배 기사들은 천대받던 구한말의 체신부가 아니라 거대 길드 조직이었던 보부상(褓負商)을 연상시킨다. 보부상단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석왕사라는 절을 지을 때 각종 원자재를 ‘배송’해주는 일로 소금 등의 전매권을 받았다고 한다. 일제 시대 때 독립협회를 탄압하기 위해 일본이 보부상단을 이용할 정도로 그들은 구한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더 이상 택배업과 택배 기사들을 사회적 약자 혹은 사회적 취약 계층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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