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 전산화 쟁점과 각계 입장

실손 전산청구, 편익은 큰데…의료계 '책임·통제' 우려에 반발

급속한 전산화와 디지털 전환 흐름을 외면한 채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의 99.9%가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결정적 이유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16일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 5건은 소비자 편익 증진을 위해 청구 전산화를 하되 의료계의 우려를 불식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았다.

입법 논의가 재개되면 의료기관에 청구 자료 전송 의무를 부여하는 입법 취지가 타당한지를 비롯해, 타당하다면 전송 중계기관 역할을 누가 해야 할지, 의료계의 불안을 해소할 만한 조처를 어디까지 마련해야 할지, 각종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가입자의 청구 불편을 줄여주는 핀테크 서비스가 청구 전산화 논의의 새로운 변수로 더해졌다.

[표] 손해보험사 실손보험 청구 형태별 청구량 현황
┌───┬───────────────┬────────┬────┬───┐
│ │ 종이서류 전달 │ 서류 사진 전송 │ │ │
│ 구분 ├───┬───┬───┬───┼───┬────┤전산청구│ 계 │
│ │설계사│ 팩스 │ 방문 │ 우편 │이메일│ 앱·웹 │ │ │
│ │ │ │ │ │ 등 │사진전송│ │ │
├───┼───┼───┼───┼───┼───┼────┼────┼───┤
│청구량│13,783│21,848│ 8,643│ 3,112│ 4,802│ 27,165│ 91│79,444│
│(천건)│ │ │ │ │ │ │ │ │
├───┼───┼───┼───┼───┼───┼────┼────┼───┤
│ 비중 │ 17.3│ 27.5│ 10.9│ 3.9│ 6.0│ 34.2│ 0.1│ 100│
│ (%) │ │ │ │ │ │ │ │ │
└───┴───┴───┴───┴───┴───┴────┴────┴───┘
자료: 손해보험 각사 취합

◇ 의료계 "실손보험 계약 당사자 아닌 병의원에 전송 의무 부여는 부당"
실손 청구 전산화법안은 환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의료계가 이에 반대하는 첫 번째 논리는 실손보험은 환자와 보험사 사이 계약인데 왜 의료기관에 청구 자료 전송 의무를 지우느냐는 것이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최근 열린 공청회에서 "계약자의 불편을 개선하는 것은 보험사가 해야 할 일"이라며, 서류 확보업무를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또 청구 서류를 보험사로 전달하는 중계기관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활용하는 데에도 극도로 부정적이다.

계류된 법안 5건은 중계기관으로 심평원을 명시했거나,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위탁할 길을 열어뒀다.

의료계는 계류된 청구 전산화법이 공보험 인프라인 심평원을 보험사의 이익 증대에 활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민간영역 침해이자 청구 핀테크 기업 죽이기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IT업계의 생존까지 거론하는 의료계의 이러한 강경한 반대 이면에는 무엇보다 전산 청구가 자칫 진료비 심사와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중계기관으로 유력한 심평원의 주요 업무가 공보험인 건강보험에서 진료비를 심사·삭감하는 일이다.

지규열 대한의사협회 보험자문위원은 "이 제도는 비급여 관리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최소한 내부자료로 사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우려했다.

실손 전산청구, 편익은 큰데…의료계 '책임·통제' 우려에 반발

◇ 보험업계 "청구 전산화 자율에 맡기면 수십 년 걸릴 수도"
보험업계는 전송 데이터를 청구 외에 다른 목적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장치가 법안에 반영됐으므로 의료계의 걱정은 기우라고 반박한다.

손해보험협회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 중계기관을 맡으면 의료정보 유출이나 오남용 우려가 차단된다"며 "중계기관이 청구업무 외에는 자료 사용·보관과 비밀누설을 금지하고 처벌 규정까지 담아 정보보안이 한층 강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업체 등 기업이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설득해 전산 청구에 참여시키는 일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보건의료사업이나 보건의료산업계의 마케팅에 민간 병의원을 참여시키려 할 때 막대한 인센티브나 영업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최근 공청회에서 "9만7천개 의료기관·약국이 청구 전산화에 참여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며 "국민이 앞으로도 수십 년간 또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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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비자단체 "환자 편익이 우선…민간 중계기관, 정보유출 우려 커"
소비자단체는 3천900만명에 이르는 실손보험 가입자의 서류 발급 불편, 의료기관과 보험사의 행정비용, 연간 4억장 이상에 이르는 종이서류 인쇄에 따른 환경 영향 등을 이유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최근 소비자단체의 여론조사에서 실손 가입자의 47%가 30만원 이하 소액 진료비의 경우 불편해서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기존 여론조사에서도 소비자들은 환자 동의를 전제로 하는 청구 전산화 지지율이 꾸준히 높게 나왔다.

여론은 청구 전산화를 한다면 중계기관으로는 기업보다는 공공기관을 선호하는 편으로 나타났다.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민간 중계기관이 업무를 맡을 경우 공공기관인 심평원보다는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중계 업체의 이익까지 더해진 비용이 발생할 텐데 중장기적으로는 보험료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단체는 또 청구 전산화는 종이서류를 전자문서로 바꾸는 것일 뿐이라며 의료계와 진보 성향 보건의료단체의 '정보 유출 우려' 주장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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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위 "적극행정 과제로 추진"…복지부 "우려 있는 게 사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놓고 정부 부처 사이에도 온도 차가 있다.

보험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청구 전산화를 올해 적극행정 중점과제 5건 중 하나로 선정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는, 가입자는 청구 편의성을 높이고, 의료기관은 종이서류 발급 전산화로 업무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보험사는 수기 입력하던 것을 전산화해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다고 본다.

심평원이 실손보험 데이터를 들여다보거나 비급여 의료행위까지 심사할 가능성을 염려하는 의료계의 시각에 대해 금융위는 다수 법안이 심평원의 정보집적·활용 금지 등 방지 장치를 마련해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여러 차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 의지를 보인 바 있다.

은 위원장은 이달 10일 공청회에서 "청구 전산화를 더 미루기에는 국민께 송구스럽고, 디지털 혁신의 선두에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심평원의 감독기관인 보건복지부는 청구 전산화법안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우려도 표명했다.

공인식 복지부 의료보장관리과장은 청구 전산화법안에 대한 명확한 찬반 입장은 밝히지 않은 채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출 서류가 간소화되고 발급비용(2만원) 부담을 줄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충분한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심평원을 중계기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의료계와 보건의료단체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보험사가 전달받은 자료를 어떻게 관리·활용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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