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실리콘실드(silicon shield). 우리 말로 '반도체 방패' 정도로 바꿀 수 있는 단어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가 크레이그 에디슨의 저서 'Silicon Shield: Taiwan's Protection Against Chinese Attack'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반도체 방패는 TSMC 등 대만 반도체 기업이 자국 안보에 기여하는 역할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다. 최근 미국 언론 VOA가 'Can Taiwan's Silicon Shield Protect It against China's Aggression(대만 반도체 방패가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대만을 보호할 수 있을까)'란 기사를 보도한 게 좋은 사례다.
실리콘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모형을 앞에 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등 'K반도체 전략보고 대회' 참석자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리콘 웨이퍼(반도체 원재료) 모형을 앞에 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등 'K반도체 전략보고 대회' 참석자들. 청와대사진기자단
'반도체 방패'의 논리는 이렇다. 대만에 있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의 반도체 공장이 중국의 공격으로 파괴되면, 전 세계 스마트폰, PC, 노트북, 게임기, 자동차, 항공기 등을 생산하는 공장들은 멈춰서게 된다.

TSMC가 미국 애플, 퀄컴, 엔비디아 EU의 NXP, 일본 소니 등의 주문을 받아 생산·납품하는 반도체가 없으면 제품 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글로벌 산업망은 마비되고 미국, EU,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피해를 겪는다.

TSMC 마비의 피해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도 똑같이 받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미국과 EU 등 강대국들은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적극 보호하게 된다. 결국 '반도체 산업'이 대만을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다.
삼성 없으면 전세계 마비되게…韓 '반도체 방패' 강화해야[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삼성전자, 2개 항모전단 도입비용 반도체에 투자

실리콘실드 책 표지. 아마존 캡처
실리콘실드 책 표지. 아마존 캡처
지난 13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2030년까지 총 510조원을 한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투자하기로하면서 '반도체 방패'란 개념이 심심치않게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보호하는 TSMC의 '반도체 방패'처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국내에 건설했거나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들이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방패 역할을 할 것이란 얘기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경기 화성 등의 파운드리 공장에서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를 미국 퀄컴에 공급한다.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필수 부품인 미국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도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에서 생산된다. 거의 모든 IT 기기에 들어가는 D램과 낸드플래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국내에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많이 짓고 미국, EU 등의 고객사를 많이 유치하는 게 국방예산에 못지 않게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항공모함과 구축함, 잠수함, 함재기 등 '항모전단'을 꾸리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0조~30조원, 이를 운용하는 데 드는 돈은 하루 100억원, 1년으로 환산하면 3조6500억원 정도라고 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액은 약 41조원이다. 1~2개 항모전단을 운용할 수 있는 비용을 삼성전자 등 기업들이 한 해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훈련중인 미국 항모전단. 연합뉴스
훈련중인 미국 항모전단. 연합뉴스

"D램과 낸드 앞세워 '반도체 방패' 강화해야"

한반도의 '반도체 방패'를 더욱 강력하게 하기 위해선 "산업 전략을 잘 짜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선 파운드리 등 한국이 '후발주자'인 시스템반도체에 투자하는 것보다 D램, 낸드플래시 등 한국이 잘 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분야에 더욱 집중해서 투자하는 게 '전략적인 선택'이 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대만 TSMC의 존재 때문에 삼성전자가 없어도 글로벌 산업계에 큰 타격이 없는 파운드리보다, 한국 업체들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산업에서 확실한 초격차(따라올 수 없는 격차)를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는 "미국이 TSMC에 계속 신경을 쓰는 건 파운드리 시장에서의 독보적인 위상과 글로벌 기업들의 TSMC에 대한 의존도 때문이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도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산업에서 후발업체들이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력과 점유율을 만들어야한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의 주장은 한국의 메모리반도체가 없으면 전 세계 산업이 마비될 정도로 강력한 기술력을 만들어야 한국의 반도체 공장이 '반도체 방패' 역할을 하며 미국 등 우방국의 강력한 보호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