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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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과 이마트는 각각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을 지배하는 기업이다. 네이버처럼 상거래(커머스) 중개만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물건을 직접 사들여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쿠팡은 지난해 119억6734만달러(약 13조원)의 매출을 거뒀다. 거래액 규모는 24조원에 달한다. 이마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22조330억원(연결 기준)이다.

업(業)의 본질과 가려는 방향은 같지만, 두 기업은 완전히 다른 경영 전략을 추구한다. 쿠팡은 ‘광인(狂人) 전략’을 구사한다. 흡사 혁명기의 이단아를 연상시킨다. 기존의 관행과 질서를 깨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이사회 의장)은 아마존이라는 전범(典範)을 충실히 따르며, 적자를 감수한 엄청난 물량 공세로 단숨에 시장 지배자의 지위에 올라섰다.
이마트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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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창동점을 1호점으로 할인점이라는 유통 채널을 들고 온 이마트는 수성(守成)의 달인이다. 글로벌 유통기업인 월마트를 한국 시장에서 쫓아 냈고, 롯데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추격을 뿌리쳤다. 이마트는 28년 간 쌓아 온 유통 노하우를 근간으로 돈을 버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왔다.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13일 공개된 이마트와 쿠팡의 1분기 실적은 판이한 두 기업의 경쟁이 앞으로도 혼전을 거듭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쿠팡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지만, 이마트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판이한 경영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두 기업 중 누가 진정한 승자일 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진검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멈추지 않는 쿠팡의 진격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을 조롱조로 부르는 별명 중 ‘롱텀(長期) 앵무새’라는 게 있다. 3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쿠팡Inc를 상장하면서 CNBC 등 미 언론에 등장해 여러 차례 인터뷰를 했는데, 민감한 질문에 ‘장기적으로는’이라는 말만 반복한 모습으로 인해 그런 별명이 붙여졌다.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발언도 용납하지 않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엄격한 ‘룰’ 때문이었는데 쿠팡의 미래를 의심하는 이들에게 김 의장의 ‘롱텀’ 발언은 비난을 위한 좋은 소재가 됐다. 김 의장은 쿠팡 상장 후 처음 실적(1분기)을 공개한 13일에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실적 발표 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그는 “쿠팡은 성장 주기(growth cycle)의 초기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1분기 영업 손실이 2억9500만달러(약 3321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0% 증가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쿠팡은 올 1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74% 증가한 42억686만달러(약 4조7348억원)의 매출을 거두며, 2010년 창업 이래 최대 매출(1분기 기준)을 거뒀지만 주식 보상 등 일회성 비용과 투자와 고용 증가로 인한 관리비 증가로 또 다시 대규모 적자를 냈다.

김 의장이 일각의 비판처럼 ‘롱텀 앵무새’일 지, 아니면 ‘플라이휠(초기엔 투자 등으로 적자를 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아마존의 장기 성장 전략)의 마법사’일 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1분기 실적에서 보여준 쿠팡의 확장성은 그의 미치광이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74%에 달하는 매출 성장률은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국내 커머스 업체 중 가장 높다. 검색 분야 1위라는 지위를 토대로 ‘쇼핑 왕국’을 지향하고 있는 네이버조차 올 1분기에 커머스로 3244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40.3%였다. G마켓, 옥션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와 함께 국내 오픈마켓의 강자인 11번가도 올 1분기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e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국내 온라인 쇼핑의 성장 과실을 쿠팡과 네이버가 거의 독식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뉴욕 증시 상장 이후 약 5조원의 자금을 조달한 쿠팡의 ‘2차 물량 공세’가 어느 정도 규모의 파급력을 가질 지에 주목하고 있다. 쿠팡은 올해에만 8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전북 완주, 경남 창원, 충북 청주 등에 대형 물류센터를 짓고 해당 지역에서 근로자들을 고용하는데 쓰일 돈이다. 김 의장이 상장과 함께 수도권 외 지방에 7개 물류센터를 짓기로 공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1조원을 넘는 돈이 추가 투자될 예정이다.

쿠팡이 ‘2차 투자’를 통해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식(食) 분야다. 김 의장은 “내년에 전국적으로 쿠팡의 손길이 닿는 범위를 50% 이상 늘릴 계획”이라며 “쿠팡의 신사업 중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인 ‘로켓프레시’의 1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2.5배 이상 늘었다”고 강조했다.

배달 전문 업체인 쿠팡이츠에도 투자를 집중할 것임을 예고했다. 김 의장은 “소규모로 시작한 쿠팡이츠는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강남 지역에 집중했지만 1년도 안 돼 제주도까지 진출하며 현재는 전국적인 서비스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쿠팡이츠가 올해 1분기 국내에서 휴대전화 앱 다운로드 순위 1위였다”면서 “쿠팡 창립 이래 그 어떤 서비스보다 빠르게 성장했다”고 소개했다.

김 의장은 ‘상장 출사표’에서 쿠팡의 미래를 보여 줄 핵심 키워드로 ‘No-trade off’를 제시했다. 소비자들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검색하고, 돌아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겠다는 야심찬 목표다. 그가 1분기 실적에 대한 자평을 통해 식(食) 분야를 강조한 건 비식품 분야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얻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앞으로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의 텃밭인 그로서리(신선식품)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겠다는 도전장이다. 김 의장은 “신선식품 새벽배송과 음식배달 카테고리는 지난해 빠르게 성장하긴 했지만, 아직 쿠팡의 침투율은 낮은 수준”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새로운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력 보여준 이마트의 '흑자 경영'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올해 경영 화두는 ‘껍데기를 버리라’다. 덩치만 키우는 출혈 경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28년(1993년 이마트 창업) ‘유통 노하우’를 활용해 품질에 집중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올해 이마트의 목표다. 증권가 추정치의 두 배를 웃도는 1분기 영업이익(1232억원)은 정 부회장의 전략이 통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13일 공시한 이마트의 올 1분기(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5조8958억원, 1232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3.1%, 154.4% 늘었다. 사업 부문별로도 고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할인점과 트레이더스가 각각 8%, 25%의 매출 증가를 달성했다. 그룹 통합 온라인몰인 SSG닷컴의 매출이 3371억원으로 9.8% 증가한 것도 고무적이다. 편의점 이마트24 매출 역시 42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4% 증가했다.

쿠팡, 네이버 등 디지털 ‘유통 공룡’들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전 부문에 걸쳐 성장을 달성한 데다 2018년 이후 3년 만에 영업이익이 ‘1000억원 고지’를 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선식품에 집중한 이마트의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고, 신세계푸드는 51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한 것 등이 흑자 경영에 기여했다.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SSG닷컴의 영업 손실도 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4.2% 적자가 줄었다.

이마트는 대형마트의 비수기인 지난달에도 월간 단위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엔 졸업 시즌(3월), 가정의 달(5월)과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 늘 적자가 나는 달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프로야구단 SSG랜더스 출범 이후 야구와 연계한 대형 마케팅 활동을 펼친 게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세금 납부 등 영업외비용이 많아 이익을 내기 힘든 4월에 흑자를 달성했다는 게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선 SSG닷컴의 폭풍 성장에 주목하고 있다. 7월에 충청권으로 새벽배송을 확대할 예정인 데다 경기권에 네번째 대형 물류센터(네오Q)를 짓기로 확정했다. SK텔레콤에서 모빌리티 사업을 총괄했던 장유성 데이터·인프라 본부장(전무)이 400여 명에 달하는 IT 개발 및 데이터 분석가들과 함께 신선식품 최적 배송을 구현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 중이다.

이와 관련, 정 부회장은 160개에 달하는 이마트 매장과 SSG닷컴의 IT 인프라를 결합해 신선식품 배송 1위 수성을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냉동·냉장 등 콜드체인 시스템을 완비하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SSG닷컴이라는 온라인 플랫폼과 효과적으로 연계할 수만 있다면 쿠팡처럼 출혈 투자를 하지 않고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