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편의 개선" 촉구에 "병의원에 왜 책임지우나" 반발
보험업법 개정안 입법 공청에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놓고 보험업계-의료계 '팽팽'
불편을 호소하는 소비자 여론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강경한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 등 국회의원 4명이 공동으로 개최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 공청회'에서는 기존의 소비자단체·보험업계 대(對) 의료계의 찬반 대립 구도가 되풀이됐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근거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 총 5건이 계류 중이다.

5건 모두 보험계약자가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 전송을 요청하면 의료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손해보험 실손보험 청구량 총 7천944만4천건 가운데 데이터 전송에 의한 전산 청구는 9만1천건, 0.1%에 그쳤다.

사실상 보험금 청구 전부가 완전히 아날로그 방식이거나 영수증 사진을 찍어 보내는 부분적 디지털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발제자로 나선 나종연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는 "여러 차례 조사에서 진료비가 소액이면 소비자들이 청구의 이익에 비해 비용을 크게 느껴 마땅히 누려야 할 (보험금)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청구 전산화를 통해 소비자의 시간, 노력, 비용을 줄여줄 필요가 있음이 실증적으로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실손보험 계약관계의 이행 주체는 보험사인데 의료기관이 서류 전송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계약자의 불편을 개선하는 것은 보험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정보 주체인 환자(보험소비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 전산 청구가 필요하다는 데 찬성하는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

토론자로 나선 신영수 변호사(법무법인 율촌)는 "의료계는 보험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발하지만, 의료법에서 의료기록을 제3자에게 전자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신용정보법에서도 신용정보 주체의 요청이 있으면 금융기관 등 제3자에게 전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환자가 의료기록 보유자 지위를 갖기 때문에 (환자의 동의에 따라) 환자의 편익을 위해 협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보험업계 쪽 토론자인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현재도 이미 의료기관에서 실손 청구 서류를 발급해 주고 있으므로 청구 편의를 높이는 서비스 개선에 참여하는 것을 의료기관에 새로운 의무가 생기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법안 내용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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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윤창현 │ 고용진 │ 전재수 │ 김병욱 │
│ (괄호 속은 발의일) │('20.7.31)│ ('20.10.8) │ ('20.7.17) │ ('20.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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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의 전송의무 │ O │ O │ O │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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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송 중계기관 │ 심평원 │ 심평원 │전문중계기관│전문중계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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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보관·비밀누설│ O │ O │ X │ O │
│금지의무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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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규정 │ O │ O │ X │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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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의 비용부담 │ X │ O │ X │ 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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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성향 보건의료단체는 의료계의 논리에 더해 청구 전산화법안이 민간 보험의 공보험 영역 침해라는 근본적 이유로 반대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 대표는 "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한 관련 법안 개정은 궁극적으로 공보험 전산망을 활용한 민간보험 가입자의 정보 집적 및 이를 활용한 상품개발, 관리운영비 절감 목적에 방점을 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윤영미 녹색소비자연대 대표는 이러한 주장과 관련, "전산 청구를 민간 핀테크업체나 보험업 관련 단체에 맡긴다면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보다 오히려 정보 유출 우려가 크고, 이 업체의 이익까지 고려하면 궁극적으로 보험료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