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 A씨는 이달 3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분양한 ‘조선 팰리스 강남’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을 일찍부터 기다려왔다. 조선 팰리스 강남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초호화 호텔. 역삼동 옛 르네상스호텔 자리에 이달 25일 문을 여는 5성급 호텔이다. 호텔 피트니스센터의 5년 부부 회원권(갱신 가능) 가격은 보증금 2억5000만원(개인 1억5000만원), 연회비 1000만원에 달한다.
 김영우 기자
김영우 기자
"돈 있어도 못 구해"…강남 호텔 '헬스회원권 대란'
몇 달 전 사전등록을 마친 A씨는 ‘전화로 회원권을 선착순 분양한다’는 호텔 측의 통지를 받고 신청일에 가족과 지인 10명을 동원했다. 당일 오전 내내 10명이 동시에 전화를 걸었다. 결과는 실패. 단 한 명도 연결되지 않았다. A씨는 이날 오후 호텔로부터 ‘250여 명의 회원 모집이 마감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와 같은 이 호텔 회원권 대기자는 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 호텔 회원권 고공행진

서울 강남권 럭셔리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이 ‘대란’에 가까울 정도의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은 원체 매물이 나오지 않는 데다, 최근 코로나19로 강남 유명 호텔들이 폐업하면서 공급이 더욱 달리고 있어서다. 최근 강남지역 회원권 가격은 최대 두 배 가까이 오르는 등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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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호텔업계와 에이스회원권거래소 등에 따르면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피트니스 회원권(부부 기준)은 올해 1월 1억532만원에서 지난달 1억3500만원으로 올랐다. 서울 삼성동에 자리 잡은 인터컨티넨탈 코엑스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 회원권도 같은 기간 각각 5625만원에서 7851만원, 1306만원에서 2480만원으로 뛰었다.

호텔은 아니지만 비슷한 성격을 띤 도곡동 타워팰리스 반트 회원권 시세도 6400만원에서 7300만원으로 오르는 등 상승세다. 조선 팰리스 강남 회원권은 프리미엄 없는 분양가만 개인 1억5000만원, 부부 2억5000만원이다. 반면 강북권 호텔 회원권 가격은 상대적으로 잠잠한 상황이다.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이 강남권을 중심으로 급등하고 있는 것은 풍부한 유동성에 반포 쉐라톤팔래스, 역삼동 르메르디앙 등 기존 호텔 폐업으로 인한 공급 부족이 겹쳐서다. 이현균 에이스 회원권 본부장은 “최근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은 강남 지역 호텔들이 주택형 부동산으로 바뀌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대표 부촌인 강남권의 회원권 수요는 더욱 갈증을 겪게 됐다”고 전했다.

회원권 업계는 가격 상승세에도 매물이 나오지 않아 물건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호텔 피트니스 회원권은 부유층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입장권’ 의미도 지니고 있어 매물이 잘 나오지 않기로 유명하다. 죽을 때까지 갖고 있다가 자녀들에게 물려주겠다는 이들도 많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회원권은 본인이 탈회하기 전까지는 결격 사유가 없는 한 평생 갱신이 가능하다”며 “어쩌다가 양도를 통해 신규 회원이 생겨도 회원 자치 기구에서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거래 자체가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조선 팰리스’ 선착순 분양, 재추첨할 듯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도는 상황에서 조선 팰리스 강남의 ‘선착순 분양’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신청자가 모집 인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공정한 추첨을 통해 회원을 선정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선 팰리스 강남의 선착순 모집은 위법 소지가 있는 셈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와 확인한 뒤 호텔 측에 추첨 전환을 권고했다”며 “추첨으로 다시 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선호텔앤리조트 측은 “예상보다 많은 수요가 몰려 벌어진 일”이라며 “공개 추첨으로 전환할 예정이고, 상세한 방식은 현재 논의 중”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이 경우 이미 가입을 통보받은 ‘예비 회원’들의 반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업계에선 조선 팰리스 강남의 분양 대란은 근본적으로 강남지역 ‘큰손’들의 수요가 공급보다 훨씬 많은 것이 이유라는 시각이다. 기존 강남권 호텔 노후화로 새로 지은 조선 팰리스 강남 회원권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다. 지난해 12월 리모델링한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도 피트니스센터는 보수 공사를 하지 않았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