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빚은 감동 시간, 예술이 되다
휘영청 내 맘을 흔드는 저 달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다면, 귀를 간지럽히듯 청아한 소리로 시간을 속삭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인간의 욕망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거쳐 문페이즈(달의 기울기를 보여주는 기능), 미닛 리피터(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기능) 같은 시계 기술로 구현됐다. ‘가장 작은 기계’인 시계는 인간의 미적 감성을 충족시켜주는 사치품이자 현대 기술의 결집체로 불린다.

명품 시계 중 으뜸 브랜드를 꼽으라면 쉽사리 하나만 대기가 어렵다. ‘시계의 왕’으로 불리는 ‘파텍필립’부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바쉐론 콘스탄틴’, 유행을 타지 않고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롤렉스’, 모든 부품을 100% 자체 제조하는 ‘예거 르쿨트르’ 등 제각기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투박하지만 캐주얼하고 독특한 ‘파네라이’는 스트랩을 자주 갈아 끼우는 이른바 ‘줄질’을 즐기는 마니아층이 두텁고, 혁신적 소재로 스포츠워치를 내놓는 ‘로저드뷔’는 매년 과감한 도전을 시도한다. 여성용 시계로는 클래식한 ‘까르띠에’나 화려한 ‘쇼파드’, ‘피아제’ 등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엔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이 경기 중에 착용한 시계 브랜드 ‘리차드 밀’, 옥타곤 모양의 ‘로열오크’로 젊은 층 사이에서 유명해진 ‘오데마 피게’ 등도 떠오르고 있다. 2001년 선보인 리차드 밀은 연간 3000여 개의 시계만 생산하기 때문에 희소성 측면에서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가수 퍼렐 윌리엄스, 지드래곤 등이 즐겨 차는 시계로도 이름을 알렸다. 이 밖에 독일 특유의 정교함을 자랑하는 ‘랑에운트죄네’, 독특한 디자인의 ‘율리스 나르덴’, 독립 시계 브랜드 ‘H 모저앤씨’, ‘스피크마린’, ‘르상스’ 등 흔하게 볼 수 없는 시계를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명품 브랜드들에 올해는 또 한 번 도전하는 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스위스 시계박람회가 취소됐고 그 여파로 전 세계 바이어들에게 제품을 선주문받지 못한 곳이 수두룩했다. 물론 급하게 디지털 박람회를 열었지만 소비 심리가 위축됐고 디지털 방식도 어색했다. 올해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워치스앤드원더스’의 디지털 박람회를 일찌감치 준비했고 야심작들도 세상에 공개됐다. ‘천체의 시간’을 담았다는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의 98.6%를 재활용 소재로 제작한 파네라이, 다이얼 양면을 돌리는 시계 ‘리베르소’의 뒷면을 화려하게 꾸민 예거 르쿨트르 등이 대표적이다.

‘세상은 변해도 클래식 워치는 영원하다’고들 한다. 디지털 시계를 차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클래식한 기계식 시계를 선호하는 마니아층도 많아진다는 게 시계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시계에 관한 지식이 깊어질수록 남다른 기술력을 갖춘 럭셔리 워치메이커를 찾게 된다는 것. 게다가 지금은 불안정한 시대, 오차 없이 정확하게 구동되는 기계식 시계의 매력은 더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고 있다.

민지혜/배정철 기자